타이어 기술력이 성패가르는 내구레이스, 모터스포츠 기술력 양산차에 접목해
"엔진과 타이어, 오일에 이르기까지 양산 자동차를 바탕으로 이들이 달릴 수 있는 한계점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등 수퍼카라도 여기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어요. 메이커의 밸류가 아니라 차를 이루는 모든 부품 하나하나가 최고의 내구성과 성능을 발휘해야 우승합니다."
말레이시아 세팡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만난 일본 콘도(Kondo) 레이싱팀 관계자는 흥분과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다.
내리쬐는 뙤약볕만큼이나 뜨거운 레이스의 열기가 가득한 이곳은 2011 수퍼GT 3라운드 결승전이 치러지는 말레이시아 세팡 인터내셔널 서킷이다.
◇자동차의 한계점 넘나드는 내구레이스, 수퍼GT=지난 19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세팡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수퍼GT 3라운드가 열렸다. 4월말로 예정됐던 1라운드는 동일본 지진으로 취소됐다.
수퍼GT는 독일 투어링카 챔피언십인 DTM, 프랑스 르망 24시 레이스와 함께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자동차 내구 레이스 가운데 하나. 내구 레이스란 자동차가 견뎌낼 수 있는 극한의 상황과 속도를 통해 완성차 메이커는 물론 타이어와 부품기업의 기술력을 겨루는 경주다.
전일본 그랜드투어링카 챔피언십으로 출발한 수퍼GT는 매 경기당 5만여 명의 관객이 참관하는 일본 최고의 모터스포츠 대회다.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연 10회 안팎의 경기를 치러 최종 우승팀을 가린다.
경기에 참가하는 레이싱 카는 출력과 개조 범위에 따라 GT500과 GT300으로 나뉜다. 클래스가 나뉘었을 뿐 경기는 함께 치른다. 박진감을 더하기 위해 두 그룹이 한데 뭉쳐 동시에 출발한다.
GT500 클래스는 상대적으로 마력이 낮은 GT300 클래스와의 경기에서 압도적인 포획자가 된다.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과 미캐닉은 침이 마르겠지만 보는 이들은 그저 박진감을 즐기면 된다.
올해 수퍼GT는 스페셜 레이스를 포함해 총 8번의 경기를 통해 최종우승을 가리게 된다. 이 가운데 일본에서 7번 경기를 개최하고 이 가운데 3번째 경기는 일본을 벗어나 말레이시아 세팡 서킷에서 치른다. 일본 안방잔치가 아닌 글로벌 모터스포츠로 도약하기 위한 발돋움이다.
◇본격적인 결선에 앞서 다양한 이벤트 선보여=말레이시아는 모터스포츠에 한해선 분명 우리보다 선진국이다.
이미 F1 경기를 꾸준히 치르면서 모터스포츠에 대한 저변도 넓혔다. 덕분에 F1을 비롯해 수퍼GT 등 다양한 이벤트가 커다란 국가 이벤트로 자리잡고 있다.
1999년 개장한 세팡 국제 서킷(Sepang International Circuit) 역시 수도 쿠알라룸푸르 인근에 자리해 접근성이 뛰어나다.
총 길이는 5.542km. F1 머신이라면 시속 300km/h이상 속도를 낼 수 있는 직선구간도 두 곳이나 존재한다. 그밖에 다양한 코너는 추월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래서 세팡에서 열리는 모터스포츠는 언제나 박진감이 넘친다.
결승전을 앞두고 세팡 서킷에 가장 먼저 발을 담갔던 주인공은 공교롭게도 45인승 버스. 주최측은 오전 10시 관람객을 위한 ‘서킷 사파리’를 마련했다. 수퍼GT에 참가하는 레이싱카와 함께 일반관람객을 태운 버스가 서킷을 함께 주행하며 일반인들에게 보다 가깝게 서킷을 체험토록한 주최측의 배려였다.
세팡 구석구석을 내달렸던 버스가 피트인(?)하면서 본격적인 레이스 준비가 시작됐다. 서킷을 달리지 않을 뿐이지 ‘공도 최강’을 앞세운 다양한 수퍼카의 이벤트 주행도 이어졌다.
람보르기니 가야르도와 BMW M3, 페라리 360 모데나 등 걸출한 스포츠카들이 GT 시리즈의 마지막 경기에 앞서 서킷을 달궈내며 타이어 가루를 흩날렸다. 40여대의 수퍼카가 화려한 서킷 체험주행을 선보이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수퍼카들의 로드쇼가 끝날 무렵 서킷의 남쪽 패독에선 서킷의 짜릿함을 고스란히 이어 록 콘서트도 이어졌다. 세팡은 시각과 청각과 후각을 자극하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정점을 자극하고 있었다.
◇포르쉐 앞세운 개막전 우승 거머쥔 한국타이어 KTR팀=오후 4시 본격적인 레이스에 앞서 예선을 거친 경주차들이 출발점에 줄지어 늘어섰다.
이미 예선전을 통해 먹이사슬의 최상급 포획자순이 결정됐고 이에 따라 출발점의 서열도 갈라졌다. 세팡 레이스의 경구 1주 5.54km의 서킷을 총 56번 돌아야 한다. 총 거리는 310.5km를 2명의 드라이버가 전후반을 나눠 1시간 30분 안팎에 달려야 한다.
평균시속 150km. 단순한 자동차 전용도로 310km가 아닌, 미친 듯이 굽이치는 코너와 코너를 휘감아가며 달려야 한다. 자동차와 이를 이루는 부품, 드라이버의 한계가 고스란히 날카로운 경쟁의 기준이 돼버린다.
이번 ‘그랜드 투어러’라는 명제에 걸맞게 엔진을 비롯한 레이싱카의 세팅이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한국에선 '한국타이어' KTR팀이 올 시즌 일본에서 열리는 5~9라운드 경기는 물론 말레이시아 세팡 서킷에서 이뤄지는 이번 3라운드에 참가했다.
수퍼GT 2011에 참가하는 한국타이어 KTR 팀은 포르쉐 911 GT3 R을 앞세워 지난 5월 개막전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야심차게 선보인 UHP(초고성능)급 타이어 벤투스 시리즈 가운데 F200과 Z207을 경기에 내세웠다. 노면과 기후에 따라 최적의 타이어를 준비했다.
숨을 들이마시면 폐 속 깊은 곳까지 뜨거운 열기가 빨려 들어가는 세팡 서킷에서 한국타이어 KTR팀의 패독을 찾았다. 결승전을 앞두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곳은 일사분란하게 오늘 있을 경기를 대비하고 있었다.
◇한국타이어 KTR팀 9위로 3전 마무리=KTR팀의 기술지원에 나선 박한준 한국타이어 기술개발팀 차장은 진중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수퍼GT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타이어 메이커 입장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경기가 수퍼GT입니다. 실제로 한국타이어는 수퍼GT를 통해 일본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키워왔어요.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일본 타이어 메이커와 겨뤄도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랬다. 자동차 강국인 일본은 이제껏 타이어 분야에서도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한국의 타이어 기업에 대한 긴장의 끈도 놓지 않고 있다.
이렇듯 한국타이어가 수퍼GT를 통해 얻어낸 것은 단순한 기술경쟁력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본 시장에서 인지도와 영향력 확대는 물론 완성차 메이커에 대한 OEM납품 등도 수퍼GT에서의 선전이 뒷받침됐다.
“한국타이어는 이제 일본 도요타에 타이어를 납품할 수 있는 승인을 받아놓은 상태입니다. 이미 다이하츠에 OEM 타이어 공급을 시작했고, 도요타 측에서 주문만 나오면 언제든 타이어를 납품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모든 게 수퍼GT를 통한 기술력과 브랜드 인지도 향상 덕입니다.”
1992년 국내 최초의 레이싱 타이어인 Z2000 개발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모터스포츠 활동을 시작한 한국타이어는 이후 꾸준히 국내외 모터스포츠 대회에 참가해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이어 “수퍼GT를 포함한 모터스포츠 지원을 통해 얻은 기술력은 곧바로 양산 타이어 개발에 접목되고 3~4년 뒤면 실 제품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견딜 수 있는 재질과 보이지 않는 타이어 코드 등의 기술개발도 모터스포츠를 통해 얻어낸 노하우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각종 모터스포츠에서의 성장과 성적이 완성차 메이커 OEM 타이어 시장 확대에 직결되는 만큼 한국타이어의 글로벌 모터스포츠 진출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 통한 기술력 강화, 브랜드 가치 및 신뢰도 증대에서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둬온만큼 향후 꾸준한 스폰서십을 통한 시장 확대전략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한편 한국타이어 KTR팀은 이날 GT300 그룹에서 6번 그리드로 출발했다. 한때 12위까지 뒤쳐졌으나 경기 중반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9위로 마무리했다. 비록 2라운드 시상대에 오르진 못했지만순위를 빼앗고 앞지르기를 반복하는 동안 한국타이어의 기술력은 오늘도 또 한번 진일보했다. 오는 7월 치러질 4라운드가 기대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