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최초의 정유ㆍ화학공장 운영 노하우 전파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가량 다낭으로 날아간 후 다시 버스를 타고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곳은 베트남 중부의 외곽지역 꿩아이. 일반인들의 왕래가 쉽지 않은 이 조용한 도시에 대한민국의 에너지 기술이 빛을 발하고 있다.
산유국이지만, 원유 정제시설이 없던 베트남에 처음으로 석유ㆍ화학 공장이 건설된 베트남 BSR(Binh Son Refining & Petrochemical Co. Ltd)사가 있는 곳이다.
처음 공장에 들어서면, SK에너지의 빨간 로고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은 엔지니어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SK에너지의 전문 기술인력 100여명이 지난해 9월부터 파견돼 석유·화학공장의 전반적인 가동 노하우와 유지보수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현장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에너지기업 직원들이 산유국 베트남의 정유공장과 화학공장의 생산기술을 전수 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SK에너지의 베트남 BSR사 기술수출은 그 동안의 회사 기록들을 갈아치웠다. SK에너지의 기술 수출이 지난 1998년부터 시작된 이후, 국내 에너지기업 역사상 최대의 해외 기술인력 파견, 단일 기술수출 최대 규모, 일부 공정에서의 기술전수 수준을 넘어 국내 최초로 타국의 정유·화학공장의 운영을 총괄하는 등 기술 수출의 새 지평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SK에너지와 BSR사는 지난해 9월 베트남 최초의 정유·화학 공장의 O&M(공장운영 및 유지보수)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고 공장 운영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있다. SK에너지는 울산 공장의 석유생산, 생산기술, 생산관리, 설비관리 등 분야별로 경력 10년 이상의 전문가 103명을 1차로 파견했다.
직원들이 베트남으로 떠날 때 한국에서 가져온 것은 간단한 짐과 베트남어 사전이 전부. 수 십년 동안 쌓아온 그들의 노하우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베트남 직원들의 지식과 열정 뿐. 공장 곳곳에서 SK에너지 직원과 BSR사의
베트남 현지 직원들이 설비 및 공정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하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촘촘히 연결된 파이프 사이로 어떤 제품이 어떻게 이동되는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지 않으면 왠만한 엔지니어들도 이해할 수 없는 정유공장의 현장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기에 어느 국적의 석유화학 공장인지는 중요치 않아 보인다.
SK에너지 성학용 BSR공장운영본부장(전무)는 “BSR사는 베트남 국가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회사이기 때문에 베트남 최고 엘리트들이 공장에 모여있다”며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힘 쏟고 있고 그들도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안다”고 설명했다.
BSR공장은 오는 12월15일 유명인과 가수 등 3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준공식을 연다. 상업생산을 한 지는 꽤 됐지만 지금 준공식을 하는 이유는 이제야 베트남 사람 힘에 의해 돌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베트남 사람에게 노하우와 기술을 전달해 준건 SK에너지 직원들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현재 경제 부흥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BSR사 정유ㆍ화학 공장도 베트남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 가운데 하나다. 베트남 국영석유회사인 페트로베트남(PVN)이 약 25억달러를 투자해 일산 15만 배럴의 정제시설(CDU)과 일산 7만 배럴의 중질유분해시설(FCC) 등 14개 공정을 가동하고 있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새로 지은 공장을 누구보다 먼저 돌린다는 것은 설레고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많은 변수들이 널려있어 항상 긴장해야 한다” 며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쌓아온 우리의 기술력이 다른 국가의 기간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쓰인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고 소감을 밝혔다.
SK에너지와 BSR사의 다음 도전은 정유공장의 첫 정기보수다. 성학용 전무는 “정기보수는 짧은 기간내에 일을 처리해야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위험성이 많은 큰 프로젝트”라며 “특히 베트남엔 이번이 첫 정유공장이라서 기술진과 협력업체가 거의 없다. 수익성을 떠나서 한국과 베트남의 자존심을 걸고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BSR 공장은 베트남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유산업의 역사에서도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다. 1962년 국내 최초의 정유회사(당시 대한석유공사)로 시작해 48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이제는 다른 나라의 최초 정유공장 가동에 기술력을 전수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른 것이다.
석유 부존자원이 제로에 가까운 나라에서 공정 운영 기술력의 우위 확보를 통해 세계 석유제품시장에서 ‘Made in Korea’ 제품의 프리미엄을 획득해낸 데에는 컴퓨터도 잡아내지 못하는 오차를 망치 하나로도 잡아낼 수 있는 전문가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야말로 자원빈국이 자원부국에 기술을 수출함으로써 기술 부국, 기술 보국을 실감나게 하는 현장이다.
1964년 일산 정제능력 3만5000배럴의 제1상압증류시설을 수동으로 정상 가동해 대한민국 최초의 석유제품을 생산한지 반세기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저 멀리 타국의 정유공장에서 다시한번 첫 석유제품을 만들어 냈다.
SK에너지는 이러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 7월에는 정유공장에 이어 BSR사의 신규합성 수지(PP : Polypropylene)공장에 대한 운영 및 유지보수 계약도 체결하는 등 베트남과의 협력 관계를 더욱 다지고 있다.
화학공장에는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해 SK에너지의 생산기술, 생산관리, 설비관리, 안전·환경·보건 등 각 분야별로 경력 10년 이상의 전문가 20여 명과 글로벌 기술인력 10여 명을 선발해 지난 7월 추가로 파견했다.
이로써 SK에너지는 BSR정유공장의 유지·보수 서비스를 포함해 중질유 분해시설에서 생산되는 프로필렌(Propylene)을 원료로 연산 15만톤 규모의 합성수지 제품을 생산하는 전공정을 관리하며 향후 5년간 9000만 달러의 매출 증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SK에너지 관계자는 “화학공장의 추가 O&M 계약은 지난 1년여 동안 베트남 최초의 정유공장 운영을 성공적으로 완수했기에 가능했다”며 “베트남에서 확산되고 있는 문화 한류와 더불어 기술 한류의 선봉장이란 사명감을 가지고 작은 공정 오차도 허용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