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조건 까다로워...기업회생 멀고먼 길
“키코 손실로 경영 여건이 극도로 악화된 데다 신용등급 하락과 이자 부담 등으로 인해 회생이 어려운 업체들을 돕기 위한 대책이 아니어서 결국 대부분 피해 기업들은 워크아웃이나 줄도산 위기에 내몰릴 것이다.”
정부가 최근 외환파생상품인 키코(KIKO) 관련 피해를 본 중소기업에 추가로 자금을 지원하기로 한 결정을 두고 관련 기업들의 속내는 씁쓸하기만 하다.
지원책 조건을 맞추기도 힘든 정부의 지원책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원만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지난 2년여간 피해 기업의 정상화 및 주가 회복을 기다린 투자자들의 속내 역시 편치 않다.
키코는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한 환헤지 상품으로 환율이 하한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을 무효로 하고, 상한 이상으로 올라가면 약정액의 1~2배를 약정환율에 매도하는 방식이다.
지난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에 환율이 급등하자 이 상품에 가입한 많은 수출 기업들이 큰 손해를 보면서 논란이 됐다. 상한을 벗어나 환율이 급등하면서 기업의 손실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수출 기업들도 키코 사태를 피해가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태산엘시디는 지난 2008년 전년대비 23% 이상 신장한 매출액과 1630% 급증한 영업이익을 달성했음에도 키코 거래·평가손실이 순손실로 잡히면서 중견기업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7682억여원의 순손실을 기록, 흑자부도를 내 상장폐지 위기까지 내몰리기도 했다.
플랜트 모듈 제조업체인 성진지오텍도 유가증권시장 입성 1년여만에 키코에 발목을 잡혀 주가가 4분의1 토막났다. 이에 관련 기업에 투자한 주주들의 속은 새카맣게 타다 못해 재가 됐다.
정부가 내놓은 2차 지원책에 조속한 경영정상화를 기대해보지만 피해 기업들은 지원 조건의 까다로움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극도로 악화된 경영 여건과 키코 때문에 망가질대로 망가진 재무제표로는 지원책을 얻기 위한 조건을 맞추기가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에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정부의 생색내기 정책에 피해 기업 대부분이 워크아웃이나 줄도산 위기에 내몰릴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기업은 생존권, 은행은 무분별한 상품 판매 및 위험성을 감췄다는 의혹으로 인한 도덕성 흠결, 정부는 이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고 안일하게 사태 해결에 대처했다는 서로의 입장이 첨예하게 얽히고 섥히면서 키코 사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도 키코 사태와 유사한 사태가 있었으나 기업과 은행이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키코 문제 역시 해결 방안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 서로의 입장만을 내세워 대립각을 세우기 보단 원만한 합의를 통해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