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③ 일본 최고의 총리는 기무라 다쿠야?

입력 2010-09-07 16:38수정 2010-09-0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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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총리되는 일본, 그 허와 실

(편집자주 : 20년간 총리 14명, 5년간 총리 1인당 평균 재임기간 평균 12개월 미만. 현재 일본 정치의 현주소다. 이름을 기억할만하면 바뀐다는 냉소가 나올 정도로 잦은 총리 교체는 일본의 국정 혼란은 물론 성장 동력을 좀먹고 있다. 3회에 걸쳐 일본의 잦은 리더 교체의 배경과 부작용을 진단한다.)

<글 싣는 순서>

① 별난 평등주의로 경제는 뒷전

② 세습의 덫에 걸린 일본

③ 일본 최고의 총리는 기무라 다쿠야?

“기무라 다쿠야 총리 지지율 27.4%”

지난 2008년 일본 최대 민영방송국인 후지테레비에서 만든 드라마 ‘체인지(CHANGE)’의 마지막회 시청률을 다룬 기사 제목이다.

‘체인지’는 2008년 5월 12일부터 같은 해 7월 14일까지 매주 월요일 안방극장을 점령했던 인기 드라마.

체인지의 마지막회 시청률은 드라마로서는 학원물을 다룬 ‘고쿠센’의 첫 회 시청률인 26.4%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드라마 ‘체인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사쿠라 게이타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중의원이었던 부친을 잃은 뒤, 아버지의 후계자로 보궐 선거에 출마해 당선, 총재선을 거쳐 총리 자리에까지 올라 정계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일본 톱스타 기무라 다쿠야는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아사쿠라 총리를 연기하며 당시 실제 총리였던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인기와 대조를 보였다.

이 같은 내용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비롯해 당시 일본 주요 뉴스와 와이드쇼 같은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다뤄지는 등 장안의 화제였다.

자민당의 나카가와 히데나오 전 간사장과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 등 현역 의원들까지 ‘체인지’의 열렬한 팬이었음을 시인했을 정도.

기무라 다쿠야 내각에서 당시 자민당 간사장을 연기한 나카무라 아쓰오는 실제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참의원 의원을 지낸 바 있다.

출연자들 가운데 유일한 정계 경험자인 나카무라는 “현역 시절에는 무소속의 한 마리 늑대에 불과했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간사장으로 출세했다”며 “이 드라마로 사회가 어떻게 변화될지 기대된다. 국민을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기무라 역시 이 드라마 제작 발표회장에서 “체인지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당시 일본 정계는 경기 침체 조짐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정치가들의 잇단 실언과 연금 문제, 총리의 지지율 하락 등으로 난타전이 한창이었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에서부터 실제 정치인들까지 기무라에 거는 기대는 남달랐을 터.

기무라는 드라마 종방 기자회견에서 “현장에서의 총리는 결코 고독하지 않았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이해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했습니다” 라고 소회를 밝혔다.

▲일본 톱스타 기무라 다쿠야가 주연한 정치 드라마 '체인지'의 한 장면. 기무라는 이 드라마에서 아사쿠라 게이타 총리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같은 해 9월 1일 후쿠다 총리는 국민들의 이해를 얻지 못한 것은 물론 당내 퇴진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아베 신조 직전 총리에 이어 단명 총리에 이름을 올렸다.

후쿠다 총리가 아사쿠라 총리에게 굴복이라도 한 것인가.

그러나 기무라가 연기한 아사쿠라 총리 역시 드라마 종료와 함께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후쿠다 총리는 사의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에서 “정치 정세가 좋지 않고 경제상황까지 어려워지면서 기존 체제로는 (일본을) 제대로 이끌고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사임 이유를 밝혔다.

당시 일본 언론과 국민들은 대체적으로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1년 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1년도 안된 시점에서 참의원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임한데 이어 후쿠다 총리도 똑같은 전철을 반복함으로써 일본 정치 풍토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2009년 8월 30일 아소 다로 정권에서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민심은 민주당을 선택했다.

자민당 정권은 관료와 기업을 우대하면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지난 54년간 정치와 기업, 관료의 유착이란 치유할 수 없는 병폐를 낳았다.

이로 인해 각 분야에게 가진 자의 기득권이 유지되는 정책이 추진됐고 국민들은 빈부 격차와 실업문제 등의 어려움을 겪게 된 것. 이에 대해 누적된 불만과 불신이 중의원 선거에서 폭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몰표를 던진 것은 자민당 정치의 종식과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일 뿐 민주당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 표현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집권 이후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에 이어 현재 간 나오토 총리까지 저조한 지지율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국민들의 아낌없는 지지 속에 70%대의 지지율을 등에 업고 출범한 민주당 정권은 의욕적으로 일본 '바꾸기'에 나서 탈(脫)관료와 낙하산 인사 개선, 예산 절감, 주변국과의 관계개선 등에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정권 핵심부의 정치자금 의혹과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등으로 하토야마 정부가 출범 8개월여 만에 무너졌다.

하토야마의 뒤를 이은 간 총리는 국정 안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데다 취임 3개월 만에 치러지는 당 대표 경선에서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의 도전을 받아 단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일본의 총리 자리가 걸린 당 대표 경선에서 패자가 승복하고 국정에 협조할 경우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당이 두 동강나면 정국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현재의 경제 위기와 국정 혼란을 잠재우지 못할 경우 정권은 다시 자민당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다행히 내각 지지율은 7월 참의원 선거를 전후해 30%대까지 떨어졌다가 최근에는 다시 50%대로 회복됐다. 또 국민의 62%는 여전히 민주당에 의한 정권교체를 잘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민들이 과거의 자민당 정권에 대한 염증이 워낙 강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민주당이 당 대표 경선 등 내부 권력 다툼에서 벗어나 국정 안정과 경기 회복에 최선을 다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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