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기로 팬들 흥미 자극...홍보효과 극대화
에드워드 버네이즈가 1920년대 PR의 아버지였다면 현재 미국 마케팅의 제왕은 잡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잡스가 현대 마케팅의 제왕에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버네이즈 방식과 할리우드식 마케팅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완성시킨 비결이라고 최근 분석했다.
버네이즈는 여성의 흡연이 금기시되던 1920년대에 파격적인 전략으로 여성의 흡연을 자유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당시 맨해튼 5번가에서 열린 부활절 행사에서 ‘자유의 불길(Torches of freedom)’을 손에 든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며 행진하도록 했다.
이 모습은 현장에 있던 사진기자들의 주목을 모으는 것은 물론 5주 후 뉴욕 대부분의 극장에 여성전용 흡연실이 생겨나게 할 만큼 파급이 컸다.
잡스는 이 같은 버네이즈의 방식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애플의 다기능 휴대형 단말기 ‘아이패드’를 자유나 해방을 위한 무기로 표현한 것.
5월 IT 업계 기자와 주고받은 메일에서 그가 "아이패드는 개인정보를 훔치는 프로그램으로부터의 해방, 배터리를 낭비시키는 프로그램으로부터의 해방, 포르노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이런 점에서 잡스는 버네이즈의 진정한 후예라 할 수 있다고 추켜세웠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그 일례로 극비에 부쳐졌던 스마트폰 ‘아이폰4G’ 유출 사건을 꼽았다.
지난 4월 애플의 한 엔지니어가 극비리에 개발 시험 중이던 ‘아이폰 4G’를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시티의 한 바에서 잃어버리는 상황이 발생, 한때 소동이 벌어졌다.
미국의 대형 IT 블로그 기즈모도는 이 테스트기를 재빨리 입수해 얇은 두께와 고화질 화면, 영상통화 기능 등 주요 신기능을 공개해버렸다.
그러나 6월 7일 샌프란시스코 개발자컨퍼런스(WWDC)에서 공개된 ‘아이폰 4G’ 는 기대 그 이상이었다.
잡스 CEO는 “이미 보신 것이 아이폰 4G의 전부라면 발표를 그만두겠다”며 자신만만해했을 정도.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아이폰 4G’ 유출 사건이 잡스의 계산된 전략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일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잡스의 신제품 발표 방법이 영화의 도시 할리우드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략이라고 전했다.
영화사들은 영화 개봉 전 예고편과 포스터, TV 광고, 티저사이트(단편적 정보를 조금씩 광고하는 웹사이트) 등을 적절히 활용해 관객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또 개봉일이 다가올수록 광고 수위를 높여 오락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영화 개봉전 영화사의 이 같은 광고활동이 영화 자체에 필적할 정도로 영화팬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할리우드식 마케팅이다.
제품 자체보다 사람의 욕망을 움직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잡스는 1984년 할리우드식 마케팅 전략을 IT업계에 처음 도입했다.
자사의 PC ‘Mac(맥)’의 초대 모델 출시를 대중문화의 전환기로 삼은 것이다.
잡스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에게 연출을 부탁하고 나중에 슈퍼볼 CM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SF급 CM ‘1984’를 공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1984’는 한 독재자가 노동자들을 앞에 두고 컴퓨터 영상으로 연설을 하는 가운데 한 여성(애플)이 등장해 화면을 향해 자유의 해머를 던지는 내용이다. 해머는 당시 IT업계의 거인이었던 IBM에 대한 애플의 도전임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잡스가 회사를 떠나있던 12년간 애플은 암흑천지였다. 실적 악화는 물론 애플만의 독특한 분위기도 사라졌다.
1997년 잡스의 복귀와 함께 애플 신화는 다시 시작됐다. PC ‘아이맥’과 휴대형 음악플레이어 ‘아이팟’을 포함해 '아이폰' 시리즈와 '아이패드'까지 거침없는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
기업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메소드의 딘 클러치필드 수석 파트너는 “아이폰4G를 잃어버린 엔지니어의 실수가 고의든 우연이든 애플에 극적인 효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라며 “그런 실수도 애플의 전략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극찬했다.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 브랜드센터의 케리 오키프 센터장은 “전 세계가 인터랙티브로 연결된 지금도 프리젠테이션 기능은 중요하다”며 “지금도 대중은 그런 능력을 갖춘 세일즈맨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애플의 잡스가 그 적임자”라며 “새로운 마케팅맨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잡스가 마지막 마케팅의 제왕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