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관망하거나 재고 쌓기 시작
트럼프 변덕에 리쇼어링도 어려워
M&A 규모도 감소세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상호관세 유예 만료를 앞두고 세계 경제가 다시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전 세계 기업들이 아직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움직이는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지만, 투자와 거래는 이미 둔화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12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적시한 서한들에 서명했다”며 “이 서한들은 7일 발송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에 앞서 3일에는 “관세율은 10~20%에서 60~70%까지 다양할 것”이라며 “관세 부과 시점은 내달 1일이 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미 양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관세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5월 관세 수입은 전년 동월 대비 4배 가까이 급증해 사상 최고치인 242억 달러(약 33조 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중국산 수입은 43%(미국 도착 기준) 급감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변덕이 심한 탓에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수입업체들은 물품을 비축하거나 보세 창고 사용을 늘리고 있다. 보세 창고를 이용하면 최대 5년간 물품을 보관할 수 있어 시장에 출시될 때만 관세를 내면 되기 때문이다. 베인앤드컴퍼니 산하 공급망 컨설팅기업인 프록시마의 사이먼 길 수석 부사장은 “소싱 다각화를 모색하는 기업들이 늘고는 있지만, 여전히 관망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중국에 처음으로 관세를 부과했을 때 ‘프렌드쇼어링’을 추진했다.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가까운 국가와 지역으로 생산기지를 이동하는 것이다. 그랬던 기업들이 2기 행정부에선 해외로 이전했던 생산기지를 다시 미국으로 옮겨야 하는 이른바 ‘리쇼어링’ 과제에 봉착했다. 일부 기업들은 미국에 아예 새로 생산기지를 세우는 ‘온쇼어링’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선거 전 베인앤드컴퍼니가 실시한 최고운영책임자(COO) 설문에 따르면 “향후 3년간 온쇼어링이나 리쇼어링을 확대할 계획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80%에 달했다. 2022년 63%에서 상승한 것이다. 그러나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는 응답률은 2%에 불과했다. 길 부사장은 “공급사를 바꾸거나 생산 시설을 이전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고 말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닐 쉬어링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공장 이전은 8~10년이 걸리는 결정이지만,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내년이나 5년 뒤는 더더욱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럴 때는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영향을) 완화하는 게 적절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게 바로 이번 위기가 코로나19 대유행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다른 이유다. 모든 게 트럼프 변덕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투자 결정이 보류되거나 인수합병(M&A)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에이팩스파트너가 보험 중개사 PIB그룹 매각에 애를 먹는 것이 대표적이다. 컨설팅 기업 EY에서 근무 중인 매츠 퍼슨 전 영국 재무부 고문은 “기업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면 사업 영역과 공급망 관리에 대해 조치를 할 수도 있다”며 “그러나 훨씬 더 큰 영향은 얼어붙은 거래 활동에 있다”고 지적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5월에 사모펀드 등 이른바 ‘딜메이커’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관세 불확실성으로 인해 거래가 중단되거나 조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PwC의 조시 스미겔 파트너는 “거래 잔고가 전에 본 적 없을 정도로 분기별로 늘고 있다”이라며 “이는 시장 역학이나 금리뿐 아니라 관세에 대한 과감한 정책 결정을 내리는 행정부와 관련 있는데, 투자 업계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