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지난달 20일 영국 의회의 하원에서 조력 존엄사(Assisted Dying)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법안은 6개월 이내 여생이 남은 말기 환자에 한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약물을 복용해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재 조력 존엄사가 허용된 국가는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이다.
우리나라는 ‘연명의료결정법’이 2018년부터 시행되며 소극적 존엄사에 해당하는 연명 치료 중단은 가능해졌다. 하지만 적극적 존엄사로 분류되는 ‘조력 자살’은 형법상 자살방조죄나 촉탁승낙살인죄에 저촉돼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에 조력 존엄사에 대한 위헌 심판이 청구돼 있고, 관련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현행법상 아직은 엄연한 불법이다.
다만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조력 존엄사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 경향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5월 19세 이상 1021명을 대상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82%가 조력 존엄사에 찬성했다.
조력 존엄사에 대한 논쟁은 크게 ‘자기결정권 중시’의 찬성 입장과 ‘생명보호는 절대적 가치’라는 반대 입장으로 나뉜다. 두 입장 모두 헌법상 기본권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각각 나름의 윤리적·법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인간은 살아갈 권리뿐 아니라 죽을 권리도 가져야 한다고 본다.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은 단순히 삶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고통 속에서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기보다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은 뚜렷하다.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2020년 판결에서 ‘죽음을 맞이할 시기와 방식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캐나다도 조력 존엄사를 금지하는 형법 조항이 개인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생명은 단순히 개인의 재산처럼 처분 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공적 가치이자 사회 전체가 함께 보호해야 할 기본적 권리라고 본다.
국가가 조력 존엄사를 제도화하면 극단적 선택에 공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전례가 될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생명 경시 풍조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조력 존엄사가 도입될 경우 사회적 약자에게 ‘죽음의 압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말기 환자 중 상당수가 고통보다는 치료비 부담, 가족에게 짐이라는 죄책감 등으로 존엄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환자 본인이 충분한 정보나 상담 없이 조력 존엄사를 서둘러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경제적·사회적 배경이 열악한 사람일수록 삶의 선택권이 줄고 죽음을 강요받는 구조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실제 영국 의사협회는 2019년 “조력 존엄사가 제도화되면 환자와 보호자 간의 갈등, 의료진의 윤리적 혼란, 오남용 가능성에 대한 안전장치가 부족하다”며 조력 존엄사 도입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허윤 변호사는 “조력 존엄사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자신의 선택으로 마무리하려는 권리의 문제로 봐야 한다”면서도 “제도 도입에 따른 여러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에 신중한 절차와 요건, 사전 통제 장치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도움]
허윤 변호사는 법무법인 동인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방위사업청 옴부즈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 서울특별시의회 입법법률고문, 언론중재위원회 자문변호사, 기획재정부 사무처 고문변호사 등으로 활동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