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4.5세대 전투기 KF-21을 공동개발 중인 인도네시아가 튀르키예의 5세대 전투기 칸(KAAN)을 구매하기로 하면서 국내 방산업계에서 ‘뒤통수’를 맞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KF-21 관련 기술 유출 논란에 이어 약속한 개발 분담금까지 감액한 상황에서 다른 국가의 경쟁 기종을 사들여서다.
21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KAAN 48대를 인도네시아에 수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튀르키예 항공우주산업(TAI)은 KAAN 수출을 위해 인도네시아와 100억 달러(약 14조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튀르키예와 인도네시아 사이의 공동개발에 대한 기대감도 나온 상황이다. 이미 에르도안 대통령은 “KAAN 제작에 인도네시아 현지 역량이 투입될 예정”이라며 협력을 예고했다.
문제는 인도네시아가 여전히 한국과 KF-21 공동개발을 진행 중이란 점이다. 앞서 인도네시아는 2016년 초 8조 원이 넘는 KF-21 개발비의 20%인 약 1조7000억 원을 2026년 6월까지 부담하고 관련 기술을 이전받기로 했다. 이후 분담금은 약 1조6000억 원으로 줄었고, 11∼12일 방위사업청과 인도네시아 측이 공동개발 기본합의서 개정안에 서명하면서 분담금을 6000억 원으로 최종 감액하기로 했다.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사업 분담금을 연체 중이던 인도네시아 측의 감액 요구가 성사된 셈이다.
업계는 한국과의 협력을 뒤로 한 채 KAAN을 구매하겠다는 인도네시아의 태도에 우려를 보이고 있다. KF-21은 4.5세대, KAAN은 5세대지만, KF-21의 성능을 개량해 KF-21EX가 개발될 가능성이 커 ‘경쟁 기종’으로 묶이기 때문이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KAAN 도입에는 14조 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투입하면서 정작 협력 중인 한국에는 충분한 해명 등이 없다”며 “KF-21 조종석에는 인도네시아와의 공동개발을 상징하는 국기까지 그렸는데, 분담금 감액과 기술 유출 논란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1월 KF-21을 제작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파견된 인도네시아 기술진이 내부 자료가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를 반출하려다 적발됐다. 다만 검찰이 유출하려던 자료에 주요 기밀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보면서 유출 혐의를 받던 기술진 5명 전원에 무혐의 또는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최정환 LS증권 연구원은 "인도네시아가 부담했어야 할 나머지 1조 원 규모 개발 분담금은 정부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분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해당 잔여 개발 분담금에 대한 구체적인 분담 비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향후 한국 정부와 KAI가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MOU가 실제 KAAN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는 의견이 많다. 전략적 차원에서 인도네시아가 한국의 KF-21을 견제하는 전략적 움직임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KF-21은 현재까지 시험비행 누적 1만 시간을 무사고로 마치며 개발 진척 면에서 우세한 상황이다.
한편 방사청과 KAI는 인도네시아와의 방산 협력을 원활히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최종 분담금 6000억 원 중 4000억 원을 낸 인도네시아가 내년까지 잔여 분담금 2000억 원을 납부하면, 실질적인 협력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