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실용적 AI 전략 펼쳐야 할 때

이명호 (사)케이썬 이사장ㆍ미래학회 부회장

이재명 정부의 대선공약 1순위는 인공지능(AI)이다. ‘AI 등 신산업 집중육성’을 통해 경제 강국을 만들겠다는 목표와 함께, ‘AI 대전환(AX)으로 AI 3강 도약’이라는 구체적 이행방안도 내세웠다. 만약 이 공약이 성공한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 ‘IT(정보기술) 시대’를 연 것처럼 AI 시대를 연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의지 표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치밀한 전략과 실질적 실행계획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속에서도 ‘사이버코리아 21’ 등 IT 정책을 과감히 추진해, 초고속 통신망과 벤처 육성으로 한국을 글로벌 IT 강국으로 이끌었다. 이는 1990년대 인터넷 혁명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국가적 역량을 결집한 결과였다. 기술 격변기에 국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프라 투자 집중 전략, 효율성 점검해야

2016년 알파고 쇼크, 2022년 챗GPT의 등장은 AI 혁명의 본격적 시작을 알렸다. 이제 AI는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범용기술이 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흐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기존 IT 정책을 일부 확장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도 실질적 권한과 예산이 부족해 상징적 기구에 그쳤다.

이재명 대통령은 ‘AI 예산 비중 선진국 수준 이상 증액’과 ‘민간 투자 100조 원 시대 개막’ 등 강한 의지를 보였다. 다만 공약에 제시된 100조 원 투자, 인프라 확충, 인재 양성 등은 김대중 정부의 성공 전략을 연상시키지만, AI 시대의 기술적 특성을 반영한 창의적 비전은 부족해 보인다. 특히 ‘국가 대표 AI’ 개발을 강조하며 데이터센터, AI 클러스터 등 인프라 투자에 집중하는데, 과연 이 방식이 우리 현실에 맞는지 의문이다.

현재 생성형 AI, 특히 LLM(거대언어모델) 분야는 미국과 중국의 소수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독자 LLM을 개발하더라도, 글로벌 수준의 성능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이미 국내 이용자들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챗GPT 등 글로벌 AI를 활용하고 있다. 단순히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성능이 떨어지는 도구를 선택할 시대는 아니다. 과거 MS 오피스, 윈도, 안드로이드 등 글로벌 표준을 대체하려던 여러 국가들의 시도가 번번이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의 강점은 응용력과 빠른 적응력에 있다. 외국, 특히 중국의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LLM을 활용해 다양한 AI 서비스와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있다. 우리도 제조업, 의료, 교육 등 산업 현장에 AI를 접목하는 것이 더 빠른 효과와 경쟁력 강화를 가져올 수 있다. 김대중 정부도 처음부터 인터넷 기술을 국산화한 것이 아니라, 외국 장비를 활용해 인터넷망을 빠르게 보급하고, 벤처 생태계를 키운 뒤 점진적으로 국산화를 추진했다.

AI 에이전트 모델은 여러 LLM을 지원해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에이전트 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성공하면, 이후 오픈소스 방식으로 국산 LLM 개발에 참여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국산 LLM이 필요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LLM을 활용한 서비스 혁신이 더 시급하다. 대기업 중심의 LLM 개발에만 집중하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산업현장에 AI 접목해 경쟁력 신속 확보를

AI 전략의 핵심은 개방, 협력, 혁신이다. 국가와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를 AI 활용을 위해 개방하고, 제조업 등 산업 현장과 AI 기업이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데이터 샌드박스, AI-제조업 연계 지원센터 등 구체적 정책을 통해 AI 에이전트 개발과 산업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 다수의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AI 응용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개방형 생태계를 조성하고, 이들의 성공이 다시 국내 LLM 기술 고도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주권 AI’의 필요성도 제기되지만, 이는 반드시 우리만의 LLM을 개발해야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정부가 고품질 한국어 데이터셋을 구축해 글로벌 LLM 기업과 국내 스타트업에 개방하면, 글로벌 모델도 ‘한국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를 강조했다. 이제 대선공약을 넘어, 실용주의 관점에서 개방과 협력, 혁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AI 국가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래야 10년, 20년 후에도 성공적인 AI 시대를 연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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