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서울국제도서전은 왜 주식회사가 되었나

▲(송석주 기자 ssp@)
1954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서울국제도서전이 ‘주식회사’가 됐다. 공공재 성격의 도서전이 특정 주주들의 소유로 귀속된 것이다. 주식회사 전환은 도서전을 오랫동안 주최한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주도했다. 자본금 10억 원 중 출협과 출판사 사회평론ㆍ노원문고가 30%씩 보유하고 있다. 사회평론은 현 윤철호 출협 회장이 대표로 있는 곳이다.

출협은 지난해부터 정부의 재정 지원이 끊기자 최근 도서전을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후 출판계에서는 전환 과정에서 주주 구성에 대한 정보 공개나 공청회 등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 일부 법인과 개인에게 지분이 집중됐다는 점에서 사유화 논란 등의 의혹도 일고 있다.

2년 전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협은 도서전 수익금 정산과 관련해 갈등을 빚었다. 이후 문체부는 그간 출협에 지원했던 도서전 예산을 산하 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배정해 개별 출판사에 직접 지원했다. 엄밀히 말하면 도서전 예산이 끊긴 것은 아니다. 다만 예산을 출협에 배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에 출협은 도서전을 주식회사로 전환하며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논란이 일자 출협은 “도서전의 안정적 개최와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지분 모집이 공개적으로 이뤄졌다고 하나 자본금 10억 원 중 90%를 세 개 법인(출협ㆍ사회평론ㆍ노원문고)이 나눠 가진 구조는 폐쇄적인 인상을 준다. 공공성 확보를 위한 출자가 실제로는 특정 자본 중심의 도서전 사유화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도서전 사유화 논란이 일자 한국작가회의ㆍ한국출판인회의 등 다른 출판 단체들은 △공적 논의 기구의 구성 △지분 구조 및 법인 형태 근본적인 재검토 △지속가능한 공적 지원의 확대 등을 출협에 제기한 상태다. 기존의 이해관계나 기득권을 내려놓고, 도서전의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이라는 대의를 중심에 두고 논의를 이어 나가자는 것이다.

도서전은 독자와 작가, 서점과 출판사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오랜 시간 함께 일구어온 공공의 문화 자산이다. 그간 도서전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온 출협의 공로는 인정되지만, 정부와의 갈등 속에서 선택한 주식회사 전환이 장기적으로 출판 생태계를 더욱 폐쇄적인 방향으로 이끌 위험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러 출판 단체들이 지적하듯,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지분의 구조가 아니라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운영의 원칙이다.

다음 달 개최 예정인 올해 도서전의 슬로건은 ‘믿을 구석’이다. “힘들 때, 외로울 때, 당신이 기대는 ‘믿을 구석’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다는 의미에서 선정됐다. 유감스럽지만, 투명한 절차 없는 주식회사 전환이 독자와 작가는 물론 출판인 모두의 ‘믿을 구석’을 허물고 있다.

송석주 기자 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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