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쌉싸름한 맛, 은은히 퍼지는 고소함, 청량한 초록색, 건강하고 깨끗한 느낌, 어쩐지 힙한 매력까지…
말차(末茶)에 대한 관심이 심상치 않습니다. 봄이면 돌아오는 딸기 시즌이 끝나자, 눈길을 끄는 쨍한 초록색이 각종 접시 위와 컵 안을 차지했는데요. 중독적인 쌉싸름함과 감성까지 챙겼다는 평가를 들으며, 젠지들의 픽을 받은 요즘입니다.
주목할 점은 말차가 단순히 하나의 유행으로 떠오른 게 아니라,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 일환으로도 통한다는 건데요. 대체 말차의 어떤 매력이 젠지들을 홀린 걸까요?

말차가 새로운 차는 아닙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녹차는 차나무(Camellia sinensis)의 잎, 즉 찻잎을 따자마자 바로 열을 가해 덖어내는데요. 찻잎의 청아한 초록색을 그대로 살려 말리고 우려낸 차라는 점에서 '녹차'라는 이름이 붙었죠. 이걸 가루 형태로 만든 게 바로 말차입니다.
사실 녹차와 말차는 재배법부터 다릅니다. 녹차는 평범하게 햇볕 아래 키워내지만, 말차는 15~20일간 햇빛을 차단한 그늘에서 재배하는 '차광 재배' 과정을 거치죠. 이에 말차가 상대적으로 떫은 맛이 덜한데요. 찻잎을 따내 증기에 찌고 건조한 후 잎맥을 제거하고 갈아냅니다. 이러한 과정 때문에 똑같이 가루로 갈아내더라도 말차의 입자가 더 곱습니다.
형태가 다르기에 먹는 방법도 다르죠. 녹차는 말린 찻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신다면, 말차는 가루를 물에 개어 마십니다.
잎을 통째로 갈아 먹는 만큼 영양성분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녹차의 항산화물질인 폴리페놀은 말차에 더 많은데요. 폴리페놀은 심장질환이나 일부 암 질환 예방, 노화 지연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죠. 스트레스 완화 효과가 있는 아미노산인 L-테아닌도 녹차보다 높은 함량을 자랑한다는데요. 일본 시즈오카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말차를 마신 참가자들의 스트레스가 말차를 마시지 않은 참가자들보다 줄어들었다고 하네요.
카페인 함량도 녹차보다 더 높습니다. 미국 건강 전문 매체 에브리데이 헬스에 따르면 우려낸 녹차 1컵(8온스)에는 약 30~50mg 카페인이 들어있는 반면, 말차에는 약 70mg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에스프레소 1샷과 비슷한 정도죠. 카페인을 과도하게 섭취한다면 심장박동이 증가하거나 불안감, 불면증 등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녹차나 말차 역시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는 겁니다.
다만 말차의 매력도 여기에 있습니다. 커피 한 잔과 비슷한 각성 효과를 내면서도 카페인은 그보다 적고, 이완 작용,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되고요. 무심하게 인증샷 툭 올릴 수 있는 선명한 초록색 감성에 중독적인 맛까지 챙겼으니, 유행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말차의 인기는 미국에서 뜨겁습니다.
뭘 입고 바르던, 또 뭘 먹고 마시던 입소문이 나는 배우 젠데이아 콜먼, 코트니 카다시안, 벨라 하디드, 카일리 제너, 두아 리파, 헤일리 비버 등 유명 인플루언서들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도 어렵지 않게 초록빛 음료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들이 손에 말차 라떼를 들고 거리를 걷는 파파라치 컷도 적지 않죠.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제일 핫한 프리미엄 마트, 에레혼(Erewhon)에서도 말차 파우더를 조합해 자신만의 스무디를 마실 수 있는데요. 모델 겸 사업가인 로리 하비의 바닐라 말차 스무디가 지난해 10월 출시됐죠. 유기농 말차와 바닐라 오트 밀크 등이 들어가는 게 특징입니다.
틱톡에서 #matcha 해시태그는 이들 인플루언서와 함께 약 20억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이었던 산느 플루트는 자신의 말차 브랜드까지 차렸죠.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matcha authentic'(말차 감성)에 대해서도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탄단지(탄수화물·단백질·지방) 조합을 신경 쓴 건강한 식단, 꾸준한 홈트레이닝, 탄탄한 근육과 귀여운 운동복, 무심하게 툭 걸친 파자마 쇼츠 등이 '클린 걸'(Clean girl), '쿨 걸'(Cool girl) 감성과도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인플루언서들의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말차가 출몰하면서 뜻밖의 부작용(?)도 생겼습니다. 원래 말차를 좋아했던 이들이 없어서 못 먹을 수도 있게 된 겁니다.
지난달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최근 유럽, 미국, 호주에서 급증하는 수요로 인해 올해 일본산 말차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일본 교토의 일부 차 기업은 말차에 전례 없는 구매 제한을 뒀죠.
말차가 일본에서만 생산되는 건 아니지만, 차광 재배법의 원조인 데다가 장인 정신이 담긴 정교한 가공 과정, 교토라는 지역 명성과 브랜드 파워 등 영향으로 '최고급'으로 통하곤 합니다.
가디언은 일본 최대 말차 생산지인 교토 우지 마을의 말차 체험 프로그램 참가자 가운데 약 90%가 해외 관광객이라고도 전했습니다. 앞으로도 이곳을 찾는 해외 관광객들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말차 시장은 2023년 28억 달러에서 2028년 약 50억 달러로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말차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말차 라떼뿐만 아니라 초콜릿, 과자, 케이크 등 간식에서도 초록색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죠.
매머드커피는 지난달 봄을 맞아 말차 음료 4종, 디저트 2종을 출시했는데요. △말차 클래식 라떼 △핑크블라썸 말차 라떼 △말차 골든 살구 블랙티 △말차 제주레몬 크러쉬 등 100% 국내산 제주 유기농 말차를 사용한 시즌 한정 메뉴 4종이 출시 2주 만에 누적 판매량 10만 잔을 돌파했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영향도 컸습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초록색 인증샷이 꾸준히 올라왔는데요. 마시는 만족감은 물론 보는 즐거움까지 동시에 챙기며 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스타벅스코리아가 3월 선보인 '슈크림 말차 라떼'의 인기도 뜨거웠습니다. 스타벅스는 올해 봄 시즌 스테디셀러 '슈크림 라떼'와 함께 슈크림 라떼를 말차 버전으로 재해석한 신규 음료 '슈크림 말차 라떼'를 선보였는데요. 이 두 음료는 출시 2주 만에 20만 잔이 넘게 팔려 나갔습니다. 특히 지난해 판매량 톱3 음료 중 하나였던 '자몽 허니 블랙 티'보다도 높은 판매량을 보이며, '카페 아메리카노'와 '카페 라떼'에 이어 판매량 3위, 4위 음료에도 등극했습니다.
해태제과는 봄 에디션으로 '홈런볼 말차딸기'를 선보였는데요. 크림은 국내 최대 생산지 논산 설향 딸기로 만들어 상큼하면서도 달콤하고요. 여기에 해풍을 맞고 자란 제주 말차로 만든 쌉쌀한 향의 말차 슈를 더했습니다.
이밖에도 오리온의 '초코파이 말차 쇼콜라', 요거트 월드의 '제주 말차 요거트 아이스크림' 등이 출시됐고요. 노브랜드는 차 브랜드 슈퍼말차와 손잡고 말차가 들어간 샌드웨이퍼, 마들렌 등을 출시했는데요. 출시 20일 만에 16만 개가 넘게 판매됐습니다.
입안에 남는 쌉싸름함과 SNS에 남는 초록빛. 젠지의 말차 사랑은 취향과 추구미, 그리고 오늘의 감각까지 담고 있는 모양샌데요. 그래서일까요. 말차는 오늘도 젠지의 컵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