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본관 앞의 기후시계는 우리에게 아직 4년 100일이 남았다고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초 세계기상기구(WMO)는 작년 2024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5도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관측 이래 역대 최고온 기록이자, 파리협정의 1.5도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올해 초 경북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잇따라 발생한 대형 산불은 고온·건조화된 기후가 얼마나 빠르게 재난을 일상으로 바꿔놓는지를 보여준다. 지구는 더는 침묵하지 않는다.
기후위기는 이상 현상을 넘어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현대 자본주의 문명은 무수한 기술적 진보와 함께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그 대가로 지구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북극과 남극의 만년설이 사라지고, 해수면 상승으로 저지대 섬나라는 이미 침수 위기에 직면했다. 산업화와 기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섭리를 무시해 왔지만 결국 현대문명조차 생명력을 잃고 쇠퇴의 길로 접어들 위기다. 생명이 깃들지 않은 문명은 필연적으로 소멸을 향해 나아가기 마련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이념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책임 있는 정치와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난관에 과감히 도전할 정책 설계다. 기후위기는 재난을 넘어 인류 문명의 근본적 전환을 요청하는 문명사적 분기점이다. 인류 스스로가 초래한 공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에너지·경제·사회 전 분야를 ‘녹색 문명’으로 전면적 재편이 불가피하다. 녹색 문명이란 기후위기의 압박 속에서 에너지와 자원을 조화롭게 배분하고, 생태계를 존중하며, 지속가능한 가치 위에 새로운 문명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22대 총선 1주년을 맞은 지난 4월 10일, 기후위기특별위원회가 첫 전체회의를 열었다. 여야의 원내지도부 간의 공감대가 있었음에도, 정치적 경략 속에 출범은 예상보다 늦어졌다. 비로소 첫발을 내디딘 지금, 늦었지만 의미 있는 출발이다. 이번 기후특위는 21대와 달리 핵심 법안에 대한 입법심사권과 기후대응기금 예산에 대한 의견 개진권을 확보했다. 여전히 상설기구가 아니고 두 법률에만 한정된 입법권, 예산심사권한 부재 등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내년까지의 활동기한 동안 2035년 국가감축목표(NDC) 수립과 지난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배출권거래제도 정상화 등 향후 대한민국 기후대응의 향방을 가를 결정적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감안하면 결코 가벼이 볼 책무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기후위기와 에너지 시장의 대격변은 결코 녹록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트럼프노믹스’가 본격화되면서 미국의 제조업 재부흥과 에너지 패권 강화를 통해 세계에 큰 파장을 예고한다. 관세를 무기 삼아 제조업을 되살리고,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전략자원으로 활용하려는 그의 정책은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전환을 역행하려 하고 있다. 결국 트럼프의 정책 변화와 무관하게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일관된 전략을 확립해야만 한다.
국제적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외부 충격을 완벽히 차단할 수는 없겠지만,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입법과 정책을 마련하는 일은 전적으로 국회의 몫이다. 정부와 국회는 탄소중립 정책을 한층 강화하고, 유럽·일본·중국 등과의 글로벌 공급망 다각화를 추진해 각종 규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기후테크와 같은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와 선점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 힘을 키워야 생존할 수 있다. 이 같은 방향이 흔들린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질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더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불확실한 국제 정세와 기후위기라는 시대적 도전에 직면하여 기후특위는 이 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전환할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더이상 정치적 이익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국민과 국익을 위한 필수적 선택이다.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에서처럼 머리 위로 떨어지는 혜성 앞에서 고개를 들지 말라고 외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가진 자원과 수단, 과학기술로 총력 대응할 것인가? 기후위기는 바로 그 혜성처럼 다가오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정치의 역할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