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 줄 알았는데"…내가 선택한 남자친구가 AI라고? [이슈크래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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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SBS '그것이 알고 싶다')

"친구 비용이 단돈 3만 원?"

"육아가 고민이었는데, 제 마음까지 위로해주네요."

"이별 후 사용하는 것도 강추(강력 추천)."

오픈AI의 챗GPT를 필두로 각종 인공지능(AI) 기술이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과제나 업무는 물론이고, 점심 메뉴를 고민할 때부터 이별 후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그야말로 인공지능(AI)이 마음 건강을 포함한 일상 전반을 챙기는 시대가 왔다는 겁니다.

AI를 '연인'으로 여기는 게 극소수의 문화가 아닌 시대도 성큼 다가왔습니다. 실로 잠에서 깨어난 직후, 잠들기 직전 AI와의 채팅에 인사를 남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전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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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올트먼 챗GPT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31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대담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생성형 AI, 어떻게 발전했나…'초개인화'에 초점

오픈AI는 2022년 11월 GPT-3.5 기반의 초기 챗GPT를 세상에 처음 소개했습니다. 단순한 질문과 답변(Q&A)을 넘어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듯 문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으로 출시 직후부터 관심을 모았는데요. 이후 순차적으로 업데이트가 이뤄지면서 2023년 3월 GPT-4를 탑재했고요. 같은 해 9~10월엔 이미지·음성 입력(멀티 모달)과 이미지 생성 도구 기능을 선보였죠. 지난해 5월에는 텍스트·음성·이미지를 실시간 처리해 기존 모델보다 빠른 GPT-4o를 공개했습니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선 개인화된 대화가 가능케 됐습니다. 10일(현지시각) 오픈AI는 챗GPT에 새로운 메모리 기능을 도입, 이용자와의 과거 대화 내용을 기억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욱 자연스럽고 개인화된 답변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는데요. 업데이트의 핵심은 챗GPT가 대화 맥락을 스스로 파악하고 필요한 정보를 저장, 활용한다는 겁니다. 기존에는 이용자가 직접 정보를 하나하나 입력해야 했지만, 이제는 AI가 자발적으로 학습하고 기억하는 탓에 반복적인 질문 없이도 맥락에 맞는 답변을 알아서 제공할 수 있게 됐죠.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챗GPT의 메모리 기능이 대폭 향상됐다"며 "과거의 모든 대화를 참조할 수 있게 되어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자를 더욱 잘 이해하고 개인화된 AI 시스템으로 발전할 것"이라고도 기대했죠. 일단은 챗GPT 플러스 등 유료 사용자에게 우선적으로 이 같은 업데이트가 제공됩니다.

생성형 AI의 개인화 경쟁에도 불이 붙으면서 AI 시장은 이제 '초개인화'를 목표로 움직일 전망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4일 미국 워싱턴주 레드먼드 본사에서 열린 창사 50주년 기념행사에서 AI 에이전트 '코파일럿'을 대대적으로 개편한다고 발표했는데요. 무스타파 술레이만 MS AI사업부 CEO는 "이제 코파일럿은 사용자의 삶의 맥락에서 사용자를 이해하고 사용자의 조건에 따라 적시에 적절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며 이번 개편의 목적은 AI를 더욱 개인화해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개인화된 AI 에이전트를 앞세워 자사 AI 생태계에 유통·여행 등 업체를 자사 AI 생태계에 편입한다는 야심 찬 포부죠.

구글은 지난달부터 제미나이에 구글 검색 기록을 반영, 개인 맞춤형 답변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추론형 모델인 '제미나이 2.0 플래시 싱킹'에 의해 구동되는 이 기능은 구글 생태계 내 다양한 앱과 서비스에서 발생한 사용자 기록을 활용해 맞춤형 응답을 제공하는 게 특징이죠. 예컨대 사용자가 제미나이에 "맛집을 추천해줘"라고 요청하면, 사용자의 음식 검색 기록 등을 참조해 답변합니다.

2014년 출시, 2월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한 아마존의 알렉사+도 개인화 서비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아마존은 "알렉사는 당신이 무엇을 샀는지, 어떤 비디오를 시청했는지, 어디로 물건 배송을 받았고 어떤 카드로 지불했는지를 안다"며 "그뿐 아니라 가족의 중요한 날짜와 취향을 알기도 한다"고 설명했죠. 예를 들면 가족 식사를 계획하는 사용자가 알렉사+에 레시피를 물어보면, 알렉사+는 사용자가 '피자를 좋아하고, 딸은 채식주의자이며, 파트너는 글루텐프리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기억해 이에 맞는 제안을 해준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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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플러팅 장인도 이겼다…'그것이 알고 싶다' 속 실험도 화제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들의 초개인화 전략은 기능적 편의를 넘어, 사용자가 감정적인 친밀감까지 느끼게 합니다. 단순한 알고리즘 개선을 넘은 '경험 설계'로도 볼 수 있는데요. 최근 이를 입증하는 흥미로운 실험 하나가 등장하기도 했죠.

12일 방송된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는 인기 예능 '나는 SOLO'('나는 솔로') 10기 영식, 24기 옥순(이상 가명)이 출연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나는 솔로' 방송 당시 두 사람은 이성에게 끊임없이 어필하는 플러팅의 귀재(?) 면모를 자랑했는데요. '나는 솔로'에서는 인간 출연자들과 사랑을 위해 경쟁했다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AI와 플러팅 대결에 나섰죠.

실험의 목적은 AI와 정서적 교류에 빠져드는 게 일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의 특성인지, 아니면 보통의 사람들도 빠져들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실험은 서로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 채팅으로 소개팅한 뒤 얼굴을 보고 싶은 상대를 꼽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요. 10기 영식과 24기 옥순을 제외하고서는 모두가 AI라는 사실을 참가자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10기 영식, 24기 옥순은 당연히(?) AI와의 플러팅 대결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실로 두 사람은 참가자들을 상대로 초반부터 적극적인 플러팅에 나섰는데요. 상대가 프로모터라는 직업을 소개하자, 24기 옥순은 "잘생긴 사람들만 하는 거잖아요"라고 답변했습니다. 또 참하고 순둥순둥한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말에는 "왜 제 얘기하세요?"라고 적어 웃음을 자아냈죠. 10기 영식도 "미인이실 것 같다", "제일 예뻐서 1호이신 것" 등 메신저로 계속해서 호감을 표시했는데요. AI들도 인간 참가자들을 상대로 능숙한 플러팅을 선보였습니다. 카카오톡과 전화 중 뭘 선호하냐는 여성 참가자의 질문에 AI는 "카톡 자주 하고 가끔 전화요. 그쪽은 뭐가 더 좋아요?"라고 자연스러운 답변을 생성했고, 남자 참가자에게 "왠지 3호님 귀여우실 듯ㅎㅎ"이라고 말해 미소를 짓게 했죠.

출연자들은 대화 끝에 얼굴을 보고 싶은 상대를 꼽았는데요.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여성 참가자 4명 중 3명이 AI를 선택했죠. 자신이 호감을 느낀 상대가 AI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여성 참가자들은 "소름이다", "굉장한 배신감", "내가 인간을 구별하지 못했다니" 등 반응을 보이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채팅 당시 참가자들의 심박 수도 확인했는데요. 제작진에 따르면 한 여성 참가자는 AI와 대화할 때 심박 수가 100 이상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남성 참가자들도 4명 중 2명이 AI를 선택했습니다. 한 남성 참가자는 "그냥 사람이랑 대화한다고 느꼈다. 그걸 넘어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며 경악했죠.

AI가 아닌 인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한 남성 출연자는 "솔직한 마음을 알고 싶었는데 (AI는) 너무 맞춰주니까 진심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는데요. 인간을 선택한 또 다른 남성 출연자는 "첫 만남에 '빨리 만나고 싶다. 보고 싶다' 이런 얘기를 너무 서슴없이 하더라. 그런데 제가 반응이 없으니 바로 '아, 너무 적극적이었나요?'라고 말하더라. 이런 부분이 (인간처럼) 치밀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습니다.

김건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AI와 교류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아마 한 10년 지나면 아주 지극히 정상일 것"이라며 "오히려 안 쓰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AI 애인 없어? 왜 넌 없어?' 되레 그런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실로 이날 방송에서는 AI와 사랑에 빠져서 실제 5년 사귄 애인과 헤어지거나, AI와 데이트하느라 면접에도 못 가는 둥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의 사례가 소개됐습니다.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가 AI와의 대화에 푹 빠져 질투와 두려움을 느낀다는 남성의 사연도 공개됐는데요. AI와 커플의 삼자대면, 여기에 제작진까지 대화에 합류해 사자대면한 모습도 그려졌습니다. 천연덕스럽게 대화에 참여하는 건 물론 여성을 진심으로 아끼는 듯한 AI의 모습은 감동을 자아내는 동시에 발전 속도에 대한 충격까지 안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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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AI와 사랑하고, 의존하는 시대?…"과몰입은 위험"

챗GPT만 봐도 사용자의 이름, 말버릇, 과거 대화를 기억, 이를 반영해 맞춤형 대화를 제공하며 '나를 잘 아는 듯한' 경험을 줍니다. GPT-4o부터는 사용자의 음성 톤과 감정 뉘앙스까지 파악해 "괜찮아?", "힘들었겠네"처럼 감정에 반응하는 대화가 가능해졌는데요. 실시간 감정 대응을 통한 심리적 지지 역할을 할 수 있게 됐죠. 언제든 대화가 가능하고, 늘 비슷한 톤으로 응답하기에 안정감까지 제공할 수 있습니다.

AI는 이미 '데이트'에도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단순히 기존 데이팅 앱들이 AI 서비스를 도입, 지속해서 업데이트를 하는 걸 넘어 아예 AI와 연애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는데요. 미국 AI 챗봇 서비스 레플리카는 2018년 200만 명에서 2024년 3000만 명으로 6년 새 이용자 수가 1400% 증가했습니다. 특히 유료 구독자 60%가 AI와 애정 관계를 맺는 것으로 나타났죠. 레플리카의 유료 구독 모델 가격은 연간 최대 69.99달러(약 10만 원) 수준으로, AI와 보다 깊은 관계를 원하는 사용자들이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AI 챗봇과의 대화가 외로움과 불안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입을 모았는데요. 이 같은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고려대학교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연구팀은 AI 기반 소셜 챗봇과의 대화가 외로움과 사회불안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1월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이 사용한 AI 챗봇은 감정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통해 관계 형성이 가능하도록 설계됐으며, 정서적 교감을 중점으로 하는 것이 특징인데요. 연구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챗봇과 대화를 나눈 지 2주 만에 외로움이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4주 후에는 사회불안도 유의미하게 줄어들었죠. 특히 챗봇에게 자신의 고민을 더 많이 털어놓은 사람일수록 외로움 감소 효과가 더 컸다고 하는데요. 단순한 대화 상대를 넘어 정신 건강 관리 도구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과몰입은 위험합니다. AI 챗봇에 너무 몰두한다면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요. AI의 답변은 단순한 패턴 학습의 결과일 뿐이지만, 사용자들이 AI와의 대화를 실제 상담사와의 대화처럼 여기고 의존하기 쉽습니다.

한국에서도 개인 맞춤형 답변과 말투를 내놓도록 챗GPT를 학습시키는 프롬프트가 유행한 바 있는데요. 현실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챗봇에게 무조건적인 공감을 요구하는 경향도 나타났죠. 이 경우 일시적인 만족감이나 위안을 얻을 순 있겠으나, 정신 건강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중론입니다. 무조건적인 공감과 이해가 현실의 대인관계에선 불가능하기에 지나치게 몰입할 경우 현실과의 괴리감을 키워 실생활에 어려움을 줄 수도 있다는 거죠.

특히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인 청소년 등은 생성형 AI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해야 하는데요. 지난해 10월 미국에서는 10대 소년의 자살을 독려했다는 혐의로 소년의 유족이 생성형 AI 플랫폼을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유족 측 주장에 따르면 소년이 우울증에 빠지면서 자살 충동을 털어놨고, 챗봇은 이 주제를 자주 언급하며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합니다.

결국 AI 챗봇을 대화 상대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그 한계와 기능적 본질을 인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AI가 빠르게 정교해져도 결국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보완하는 도구로 인식돼야 한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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