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만에 비상계엄 선포...취임 2년 만에 나락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했다. 원칙과 소신,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강골' 이미지로 정치계에 투신, 9개월 만에 권력의 정점에 오른 윤 대통령은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대통령 취임 1061일, 정치계 입문으로는 불과 1376일 만이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 각인시킨 건 2013년. 특수통으로 불리며 국가정보원의 대통령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하던 윤 대통령은 검찰 지휘부 및 박근혜 정부와 마찰을 일으키다가 결국 좌천됐고, 그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나와 댓글수사 외압을 폭로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미운털이 제대로 박혀 한직을 떠돌던 윤 대통령은 2016년 박근혜 정부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한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하며 수사를 주도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깡패지, 검사입니까?"라는 말로 다시 한번 강골 검사의 이미지를 뇌리에 심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발탁됐고, '적폐청산'을 진두지휘했다. '원칙주의자', '칼잡이'라는 명성에 맞게 거물급 인물들을 향해 거침없이 칼날을 들이댔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도 예외 없이 포토라인에 세웠다. 윤 대통령은 승승장구하며 검찰총장까지 올랐다.
변곡점은 조국 사태였다. 권력의 무게에 굴하지 않는 강골 기질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로 이어졌고, 결국 문 정부와 충돌하면서 윤 대통령은 보수 진영의 거물로 급부상했다.
2021년 6월 29일 정치 참여를 공식화하며 대권 도전을 선언한 윤 대통령은 초고속으로 권력 정점에 도달했다. 7월 국민의힘에 입당해 11월 내로라하는 후보들을 제치며 제1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고, 4개월 뒤 2022년 3월 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20대 대통령이 됐다. 대권 도전 선언 불과 8개월 만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최초의 '0선 대통령'이었다.

'정치 신인' 윤 대통령이 단숨에 권력의 정점에 오른 건 윤 대통령의 대표 구호인 '공정과 상식', 기성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토(거부)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22년 5월 52%(부정률 37%)로 순조롭게 출발한 지지율은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 대표의 당원권 정지 사태, 윤 대통령과 권성동 의원의 문자메시지 노출 파문 등으로 3개월 만에 반 토막 났다.
집권 2년 차 악재는 더 컸다. 2023년 부산엑스포 유치에 실패했고,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이 불거졌다. 2024년 4·10 총선 참패, 의정 갈등 장기화, 야당과의 대치, 김 여사 리스크 등 연쇄 악재가 이어지면서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최저 지지율(17%. 한국갤럽)로 임기반환점(2024년 11월)을 돌았다.
야당과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취임 후 모두 25건의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대치를 이어갔고, 지난해 9월 국회 시정연설엔 여야 정쟁을 이유로 불참했다. 현직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특히 명품백 수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정치브로커 명태균 씨 관련 의혹이 더해지면서 김 여사를 둘러싼 야당과의 충돌은 더 거세졌다.
불통과 반목, 질시 끝에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이라는 최악의 수를 뒀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승부사 기질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 속 야당과의 협치에도,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데에도 실패했다. 헌재는 계엄의 불가피성과 정당성을 입이 닳도록 강조한 윤 대통령에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