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의 불공정, 현실화할 필요 없어”
“경매의 공정 해하면 성립해”
허위 임대차보증금 채권을 신고해 배당받을 선순위 권리자로 행세한 이상, 경매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발생했으므로 경매방해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경매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정모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법률적으로 경매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뿐 아니라 경매에 참가하려는 자의 의사결정에 사실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도 ‘경매의 공정을 해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30일 판시했다.
경매방해죄는 위계 또는 위력 기타 방법으로 경매의 공정을 해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추상적 위험범으로서 결과의 불공정이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요하지 아니한다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피고인 정 씨는 2009년 10월 22일 경기 용인시 한 빌라 소유권을 매매계약을 통해 김모 씨로부터 이전받았다. 이후 2016년 12월 20일 매매계약에 대한 사해행위 취소 판결이 확정됨에 따라 소유권 등기가 말소될 때까지 소유했다.
정 씨 명의 소유권 이전등기가 말소됨에 따라 그 소유권이 김 씨에게 돌아갔다. 김 씨에 대해 공사대금 채권을 갖고 있던 서모 씨는 2017년 1월 26일 자신의 공사대금 채권에 관한 확정 판결에 기해 해당 빌라에 강제 경매를 신청했다. 같은 달 말일 수원지방법원에서 강제 경매가 개시됐다.
문제는 이미 2011년 9월 12일 박모 씨가 대항력 있는 주택임차인인 것처럼 정 씨를 임대인으로 하는 전세보증금 6000만 원의 허위 전세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는 데 있었는데, 이들은 이 임대차계약서를 제출하는 방법으로 배당요구를 해서 전세보증금 상당의 배당금을 받기로 모의했다.
다만 수원지법은 선순위 채권자의 채권액을 제외하면 경매 채권자에게 돌아갈 게 없다는 이유로 강제경매 개시 결정을 취소했다. 법원에 의해 강제경매 신청이 기각되면서 결과적으로는 불공정이 현실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정 씨가 박 씨와 공모해 경매 절차에 허위의 임차권 권리를 신고하고 배당요구를 하는 방법으로 위계로서 경매의 공정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1심과 2심은 피고인들에게 적용된 경매방해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피고인들이 공모해 신고한 임차권이 현황조사보고서에 포함됐음을 알 수 있다”면서 “이는 경매 참가자들의 의사결정에 사실상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정 중의 하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은 그와 같은 사정을 포함해서 ‘공정한 자유경쟁을 방해할 염려가 있는 상태가 발생했는지’ 따졌어야 한다”며 “원심 판결 중 피고인들에 대한 경매방해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원심 법원에 환송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경매방해죄는 추상적 위험범으로 반드시 결과의 불공정이 현실적으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공정한 자유경쟁을 방해할 염려가 있는 상태를 발생시키는 ‘경매의 공정을 해하는 행위’를 하면 성립하는 범죄임을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