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짝 끼(?) 가득한 전주, 신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안무, 긴장감을 자아내는 비장한 표정까지…
열정적인 K팝 팬이라면 위 설명만 듣고도 '정답'을 외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샹하이 로맨스' 챌린지 속 모습인데요. 중독적인 노래에 쉽고 재미있는 안무까지, 흥하는 챌린지의 덕목(?)을 고루 갖추면서 인기를 끌고 있죠.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 챌린지가 인기를 끄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챌린지가 흥행하면 가수와 음반 성적도 함께 뜰 확률이 높은 만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챌린지로 활동을 시작하는 게 어느새 루틴이 됐죠.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어 저비용 고효율의 도구로도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샹하이 로맨스'는 마케팅이 필요한 신곡이 아닙니다. 해외에서 인기를 끌어 우리나라로 수입(?)된 챌린지 곡도 아닌데요. 혜성처럼 등장한 이 곡이 발매된 시점은 무려 14년 전입니다.
2011년 발매된 '샹하이 로맨스'는 그룹 애프터스쿨의 첫 번째 유닛, 오렌지 캬라멜의 싱글 앨범 '샹하이 로맨스(上海之戀)' 타이틀 곡인데요.
오렌지 캬라멜은 애프터스쿨 막내 라인 레이나, 나나, 리지로 구성됐죠. 그룹의 성숙하고 세련된 이미지와 달리 귀엽고 발랄하면서도 중독적인 콘셉트를 들고나와 화제가 됐습니다. '숨듣명'(숨어서 듣는 명곡)의 대표 주자로도 거론되는데요.
데뷔 앨범인 '마법소녀(魔法少女)'부터 미니 2집 '아잉♡', 싱글 1집 '방콕시티(Bangkok City)', 싱글 2집 '샹하이 로맨스'에 이어 정규 1집 '립스틱(LIPSTICK)', 싱글 3집 '까탈레나(Catallena)' 등 다수 앨범이 인기를 끌었는데요. 이 중에서도 최근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은 건 '샹하이 로맨스'였습니다. 사랑에 빠진 여성이 상대에게 고백하는 내용을 귀여운 가사와 반복적인 멜로디로 풀어낸 곡이죠.
이 노래는 인플루언서 오션이 글로벌 크리에이터 팀 후드 걸즈와 함께 선보인 틱톡 영상을 시작으로 챌린지 열풍이 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하기 좋은 안무로 구성돼 중·고등학생들 사이 특히 인기를 끌면서 빠르게 유행이 확산했는데요. 유튜브 인기 급상승 숏츠 1위에도 오른 바 있습니다.
아이돌들도 이 챌린지에 속속 동참했습니다. 세븐틴 유닛 부석순은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널에 "정통 후계자 부석순 등장"이라며 '샹하이 로맨스' 챌린지 영상을 게재했는데요. 오렌지 캬라멜과 부석순의 소속사는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로, 직속 선후배인 셈입니다. 오렌지 캬라멜의 정통 후계자다운(?) 날렵한 춤선, 딱딱 들어맞는 각도, 중독적인 표정 연기 등으로 유튜브 조회 수만 110만 회 이상을 기록했죠.
부석순뿐만 아니라 그룹 아이브, 엔믹스, 피프티 피프티, NCT 위시, 아일릿, 유니스, 이즈나 등 다른 5세대 아이돌들도 이 챌린지에 참여하며 눈길을 끌었습니다. 원곡자 레이나도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자신의 SNS 계정에 "본인 등판"이라며 챌린지 영상을 게재했는데요. "원조의 품격. 오렌지 캬라멜 너무 좋아해서 앨범도 다 모았다. 너무 그립다", "단발머리 가발이 그리워진다", "중학생 때부터 팬이었는데 벌써 서른 살" 등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샹하이 로맨스'의 인기는 챌린지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음원 순위까지 역주행하면서 심상찮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4일 기준 960위로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 일간 차트에 진입하더니 이용자 수가 상승해 11일엔 688위에 자리 잡았죠. 13일에도 691위에 랭크되면서 꾸준한 관심을 입증했습니다.
수년 전 종영한 예능 프로그램도 인기입니다.
'무한도전'은 종영으로부터 8년이 지났지만, MBC 간판 예능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아직도 '밥 친구'로 '무한도전'을 꼽는 애청자들도 많죠. MBC 유튜브 채널 '오분순삭'의 공이 큰데요. '무한도전'을 포함해 '나 혼자 산다', '아빠 어디 가', '거침없이 하이킥' 등 MBC 간판 예능과 드라마, 시트콤 등의 명장면을 5분 내외로 편집해 선보이는 채널입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건 단연 '무한도전'입니다. 명장면이 너무나 많아 영상 길이가 5분을 훌쩍 넘어 10분 이상에 달하는 게 일상이죠. 최근 게재된 '따귀 모음집'만 확인해도, 영상 길이가 20분을 넘습니다. 네티즌들은 "어떻게 뺨 맞는 장면만 모았는데 20분을 넘냐", "다 아는 장면인데도 재밌다"면서 배꼽을 잡았는데요. 영상에서 빠진 레전드(?) 따귀 장면들을 지적하는 '무도 키즈'('무한도전'과 함께 자란 세대)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채널에서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 영상도 '무한도전'입니다. '오분순삭' 영상 수십 개를 붙이기만 했을 뿐인 영상은 14일 기준 3017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아이돌 그룹들의 뮤직비디오 조회 수와도 맞먹는 수치입니다. 뮤직비디오가 통상 3~5분이라면, '오분순삭'의 영상은 3시간 30분에 달한다는 게 큰 차이점이긴 하죠.
'무한도전'의 인기는 오프라인에서도 재현됐습니다.
MBC는 '무한도전' 20주년을 기념해 각종 명장면으로 구성된 '무한도전 일력(日曆)'을 선보였습니다. 계절, 공휴일 등에 어울리는 장면들이 페이지마다 배치돼 세심한 기획력에 한 번, '무한도전'의 방대한 아카이빙에 또 한 번 감탄했는데요. 이를테면 새해 첫날인 1월 1일에는 코미디언 박명수가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울부짖는(?) 장면이, 밸런타인데이인 2월 14일에는 방송인 노홍철이 다이어트 도중 폭주해 초콜릿 분수에 코를 박은 장면이, 수능 기간에는 하하가 "수험생들, TV 꺼라"라고 충고하는 장면부터 멤버들이 따뜻한 응원을 전하는 장면들이 배치됐습니다.
일력 사전 예약이 시작된 지난달 11일에는 접속자가 몰려 교보문고 사이트가 마비됐습니다. 접속 대기까지 나타나면서 티켓팅 버금가는 열기를 체감케 했죠. 결국, 사전 예약이 시작된 지 2시간 만에 2차 물량까지 팔려나갔는데요. 현재 교보문고는 7차 판매 예약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주문한다면 다음 달 6일부터 순차적으로 배송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연예인보다 더 큰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도 부활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아바타 스타 슈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는데요. 쥬니어 네이버 세대라면 슈의 트레이드 마크, 만두 머리가 익숙할 겁니다.
슈는 해태제과가 2005년 만든 저연령층 타깃 애니메이션과 플래시 게임의 주인공입니다. 관련 플래시 게임들은 해태제과에서 운영하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사이트 아이부라보뿐만 아니라 야후! 꾸러기, 쥬니어 네이버 등 어린이 포털 사이트에서도 즐길 수 있었는데요. 2019년 2월 쥬니어 네이버가 게임랜드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게임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아쉬움을 자아냈습니다. 이제는 게임을 복원해놓은 아카이브 사이트 등을 통해서 슈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해태제과는 슈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계정은 열흘도 안 돼 팔로워 3만 명을 넘겼죠. 지난해 8월에는 뷰티 브랜드 아이소이와 손잡고 '슈게임 2024'를 공개해 이목을 끌었습니다. 시간 내에 슈의 외출 준비를 도와주는 '슈의 출국 준비'부터 성분을 배합해 화장품을 만드는 '슈의 잡티 세럼 만들기' 등 추억이 몽글몽글 떠오르는 게임 방식에 아이소이의 아이디어를 더했습니다.
추억의 캐릭터에 열광하는 건 우리나라뿐만이 아닙니다. 괴짜 발명가 월레스, 월레스의 반려견이지만 사실상 보호자(?) 역할을 맡고 있는 그로밋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그리는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은 16년 만에 넷플릭스 영화로 돌아와 전 세계적인 화제를 빚었죠.
닉 파크 감독과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가 1989년부터 선보인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는 영국과 클레이(찰흙)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괴짜 발명가 월레스가 사고를 치면 그로밋과 함께 이를 해결해 나가는 게 주된 이야기죠. 마지막 시리즈는 2008년 공개된 '월레스와 그로밋: 빵과 죽음의 문제'였습니다.
이후 16년 만이죠.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가 지난달 25일 영국 BBC에서 먼저 공개됐는데요. 하루에 940만 명이 시청하면서 흥행에 성공했고, 평론가들의 극찬까지 받았습니다. 북미 영화 정보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전문가 평점 100%를 기록하며 보기 드문 호평을 받는 중이죠.
'월레스와 그로밋' 인기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 한편으로 도사리고 있는 공포 영화 뺨치는, 스산한 연출력이 큰 몫을 했습니다. 한때 어린이들을 벌벌 떨게 한 빌런, 고무장갑 펭귄 페더스 맥그로는 이번 시리즈에도 얼굴을 비쳤는데요. 초점 없는 검은 동공을 16년 만에 마주한 어른들은 "저 악랄한 놈"이라며 뒷목을 잡는가 하면, "어린 시절 무서워 울던 기억이 떠오른다"며 트라우마를 호소하기도 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음악부터 예능,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요즘 것들의 옛것'이 사랑받는 지금인데요. 이들 콘텐츠는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MZ세대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알파 세대에겐 신선함을 느끼게 합니다. 특히 SNS, 온라인 커뮤니티, 온라인동영상서비스 (OTT) 플랫폼의 발전과 빠른 확산력으로 세대를 불문하고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콘텐츠가 다시금 주목받는 것으로 분석되는데요. 다음으로 대중의 간택을 받을 '옛것'은 무엇이 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