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대통령의 책상

입력 2025-01-1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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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가진 한 방송사와의 신년 대담 당시 'The buck stops here'라고 적힌 팻말을 들어올리며 문구의 의미를 전했다. "'모든 책임은 이제 내가 진다', '책임은 여기서 끝난다' 이런 얘기다." 윤 대통령은 작년 5월 취임 2년 기자회견 때도, 8월 열린 국정브리핑 때도 이 팻말을 간판처럼 내걸고 대국민 담화에 나섰다. 계엄 선포 이후 혼란한 정국 속에서도 "탄핵이든 수사든 당당히 맞서겠다"도 공언했지만, 윤 대통령의 얼굴은 관저 일대를 허가 없이 촬영한 영상이나 보도 사진으로만 흐릿하게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다.

윤 대통령은 12·3계엄 이후 11일 만인 14일에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됐다. 딱 한 달 전이다.

대혼돈은 좀처럼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탄핵안 가결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으로 혼란이 가중됐다. 경제사령탑이 대행의 대행을 맡는, 거센 후폭풍이 일었다. 헌법재판관 임명과 특검법 거부권(재의요구권)을 둘러싼 갈등, 윤 대통령의 '버티기'로 인한 사상 첫 현직 대통령 체포영장 발부와 집행.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다.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1차 체포영장 집행 직전, "유튜브로 보고 있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윤 대통령의 독려 메시지는 흩어져 있던 집토끼를 결집시켰다. 탄핵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들의 극렬한 대치에 진영 충돌은 극심해졌다. 1차 체포영장 집행은 실패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당시 '분열의 트라우마'를 자극한 듯 여당 중진들은 더 맹목적이고 단단하게 뭉쳤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과도한 우클릭 행보에 눈총을 받았다.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과 백골단의 기자회견이 대표적이다. 백골단은 1980~90년대 민주화 시위를 진압, 체포하던 경찰 부대로 폭력 진압의 상징으로 평가받았다. 김 의원이 이들을 지원사격하며 국회 기자회견을 주선했다. 비판이 거세졌고, 당조차 선을 긋자 김 의원은 이미 다 끝난 기자회견을 철회한다며 발을 뺐다. 중진 윤상현 의원도 극우 성향을 가진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았다가 논란을 샀다.

바깥에서 탄핵 후폭풍이 매섭게 몰아치는 사이 윤 대통령은 관저 내에서 두 번의 SNS 메시지를 냈다. 전남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와 미국 LA 산불 피해를 입은 교민들을 위한 위로의 글이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참사와 동맹국의 피해를 보며 애도든 위로든 마땅히 던질 수 있다. 하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계엄과 탄핵이 나라 전체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경찰과 군 관계자들이 줄줄이 구속되며 계엄의 민낯이 드러나는 와중에도 윤 대통령은 줄곧 버티기로 일관했다. 책임감과 신뢰가 절멸된 대통령의 위로는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여당의 실책과 윤 대통령의 존재감 키우기가 가능했던 건 이를 떠받쳐준 지지율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이 7~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은 34%를 기록했다. 직전과 비교해 10%P(포인트) 오른 수치다. 민주당은 36%로 12%P 하락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6~8일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는 32%, 민주당은 36%로 집계됐다. 직전 조사(지난해 12월 3주차)와 비교하면 국민의힘은 6%P 올랐고, 민주당은 3%P감소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다만 이는 여당이 절대적인 호평으로 박수를 받았다기보다 불안한 국정 운영을 야기한 야권의 책임론과 국민의 불안감, 피로가 누적된 결과다.

수사당국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해온 윤 대통령은 14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에 불참했고, 결국 4분 만에 끝났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 2차 집행은 15일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와 경찰에도, 국민 사이 사이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집무실 책상 위 팻말이 장식품이 되지 않게 위해선 회피보다 책임감 있는 선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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