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상품 인센티브로 필요”
“자발적으로 4·5세대 실손에 가입하는 것은 손해인 것 같다. 전환 가입할 이유가 전혀 없다.”(1세대 실손 가입자 20대 직장인 A 씨)
정부가 지난주 발표한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 방안을 두고 실효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자기부담이 적은 1ㆍ2세대 초기 실손 가입자들은 예외인 데다 5세대 실손 자체의 매력도 떨어져 갈아탈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관리급여 도입 등 비급여 관리 방안 역시 촘촘하지 못해 과잉 의료를 차단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2일 보험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의 실손보험 개혁방안에 대해 유불리를 따지는 실손 가입자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 다만 자기부담률이 최대 20%로 낮은 1ㆍ2세대 가입자들 사이에서는 ‘갈아타면 손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2017년 3월 이전 가입한 1ㆍ2세대 실손보험(1582만 건)은 전체의 44%를 차지한다.
금융위의 실손보험 개혁방안의 기본 골격은 자기부담률 강화다. 비급여 특약에 대해 중증(특약1과) 비중증(특약2)을 구분해 보상한도와 자기부담률을 차등화한다. 중증에서 보장하는 암 등 건강보험의 산정특례 대상 질환에 대해서는 4세대와 동일하게 보장한도와 자기부담이 유지된다. 비중증 치료는 보장한도를 50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축소하고, 자기부담률도 30%에서 50%로 늘린다.
급여 의료비도 일반질환자와 중증질환자를 구분한다. 중증질환자의 자기부담률은 4세대 실손보험과 같지만 일반질환자는 건강보험 본인부담률(90~95%)과 연동해 적용한다. 건보 내 관리급여로 지정될 확률이 높은 도수치료의 가격이 1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5세대 실손에선 9만∼9만5000원 중 90∼95%를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본인부담금 90%가 적용된다고 하면 9만 원을 병원에 낸 후 실손보험에 청구해 10%인 9000원만 보험사로부터 지급받는 것이다. 같은 도수치료를 받으면 5000원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보험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1세대 가입자들이 5세대 실손으로 이동할 이유가 없다.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인 30대 직장인 B 씨는 “그동안 낸 보험료가 있는데, 보험료가 절약된다는 이유만으로 보험금이 덜 나오는 상품으로 갈아탈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비급여 관리를 위한 병행 진료 급여 제한 대책도 논란거리다. 병행 필요성이 낮고 남용 우려가 큰 항목에 대해 급여를 제한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인데, 뚜렷한 기준 없이 병행진료 제한 비급여 항목을 고시하겠다는 내용만 발표됐다.
서인석 로체스터병원장은 “보험은 최소한으로 치료받기 위해 가입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가 1인실을 선택하고 특정 식단을 선택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만 볼 수는 없다”며 “먼저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집중해서 관리하고 관리의 범위를 넓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영건 차의과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기준도 명확하지 않은데 남용이라며 병행 진료 금지 항목으로 넣는 것은 잘못”이라며 “병행 진료가 왜 필요하고 불필요한지,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손보험 개혁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보상안이 제시돼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권병근 손해보험협회 이사는 “필수의료 붕괴와 의료전달체계 왜곡을 막기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는 당국 의지에 공감한다”면서도 “근본적인 개편으로 상품 경쟁력이 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미 보험료 인상이 많이 진행된 고령자에게 혜택을 더 제공하는 등 더 촘촘하고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제공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