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계엄·탄핵정국, 무안참사로 소비심리 '꽁꽁'
글로벌 IB,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줄줄이 하향 조정
소비 심리 악화로 내수 경기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지난해 들어 11월까지 소매판매액이 2003년 이후 2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특히 내구재·비내구재·준내구재 소비 모두 2년 연속 감소했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없던 '소비 절벽'이 심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더 우려스러운 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시작된 정치적 불확실성에 무안 제주항공 참사까지 겹치면서 소비심리가 더 쪼그라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 경제에 '저성장 한파'가 몰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소매판매액 지수는 전년 대비 2.1% 감소했다. 같은 기간 기준 2003년(-3.1%) 이후 21년 만에 최대 폭이다. 당시엔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에 따른 '카드 대란'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됐다.
이번에는 자동차·가전 등 내구재와 의복 등 준내구재,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를 포함해 모든 상품군에서 '소비 절벽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해 1∼11월 내구재와 준내구재·비내구재 소비는 각각 전년 대비 2.8%, 3.7%, 1.3% 감소했다. 2023년에 이어 2년 연속 동반 감소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모든 상품군 소비가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나 이듬해 바로 반등했다.
대표적인 내구재인 승용차 소비는 2023년 7.6% 늘었지만, 지난해 6.5% 줄면서 감소세로 돌아섰다. 준내구재인 의복 소비는 보합(0.2%) 수준을 유지했으나 지난해 3.2%로 감소 전환했다. 비내구재인 음식료품 소비는 고물가 여파로 지난해 2.5% 감소했다. 2023년(-1.8%)에 이어 낙폭을 더 키웠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6년 연속 증가했지만 최근 3년째 뒷걸음질 치고 있다.
서비스 소비 둔화세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해 들어 11월까지 서비스 생산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서비스생산 증가율은 같은 기간 기준 2022년 6.9%로 정점을 찍은 뒤 2023년 3.4%로 둔화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재화와 서비스 소비는 번갈아 가면서 증감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지만, 최근에는 동시에 부진한 모습이다.
우려스러운 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소비 심리가 쪼그라들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전월(100.7) 대비 12.3포인트(p) 하락했다. 계엄과 탄핵 정국에 따른 영향이 반영된 수치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3월(-18.3p) 이후 4년 9개월 만에 최대 하락 폭이다. 지수 자체도 2022년 11월(86.6) 이후 2년 1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무안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지난해 말 이후에는 소비 심리가 더 위축됐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참사 이후 일주일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하면서 정부 기관뿐 아니라 기업들의 연말연시 행사 취소 등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저성장 한파가 몰아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돈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애초 1% 중후반대에서 1% 초중반까지 낮췄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시작된 정치적 혼란이 경제 위기로까지 옮겨붙고 있다는 판단이 깔렸다.
JP모건은 한국 경제 성장률을 1.3%로 전망했다. 종전 전망(1.7%)보다 0.4%p 하향 조정된 수치로, 글로벌 IB 전망치 중에 가장 낮다. JP모건은 “수출이 견조하나 정치·정책 불확실성으로 지난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가 급락하는 등 내수부문이 취약한 상황”이라며 “당분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투자은행 씨티는 비상계엄 직후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을 1.5%로 11월 말 전망(1.6%)보다 0.1%p 내렸다. ING은행은 1.6%에서 1.4%로 하향 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