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개시 7년 7개월만…“대통령 기록물에 사법심사 배제되지 않아”
‘대통령 기록물’ 지정 이유 공개 거부
1심 원고 승소→2심 패소→大法 승소
“대통령에 높은 수준 재량 인정해도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한 이상,
사법심사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9일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기록관을 상대로 낸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고된 청와대 문건을 공개하라’는 취지로 선고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서 보호기간 중에 있어 정보공개 금지 처분이 적법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은 파기‧환송됐다. 소송이 개시된 지 7년 7개월 만이다.
대법원은 “대통령의 보호기간 설정 행위는 대통령 기록물법에서 정한 절차와 요건을 준수해야만 비로소 적법하게 효력을 갖게 되는 것이므로, 이 사건 정보에 대한 보호기간 설정 행위의 유‧무효 또는 적법 여부에 관해 판단하지 않았다”고 원심 판단 잘못을 지적했다.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실은 2017년 5월 박 전 대통령 관련 기록물을 이관하면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에서 생산한 기록들을 비롯한 다수 기록물을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지정했다.
‘대통령 지정 기록물’ 지정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당시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된 상태여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대신 권한을 행사해 논란이 불거졌다.
송 변호사는 대통령기록관에 세월호 참사 당일 구조 활동에 관한 대통령 비서실‧경호실‧국가안보실 작성 문건 목록에 대해 정보 공개를 청구했지만 대통령 기록물은 비공개 대상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송 변호사는 2017년 6월 “황 권한대행이 박 전 대통령 재임 시기의 세월호 7시간 문서를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봉인한 것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분류되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거나 관할 고등법원 영장 발부, 대통령기록관장 사전 승인 등이 없으면 최장 15년(사생활의 경우 최장 30년) 동안 문서를 열람할 수 없다.
앞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2020년 1월 대법원에 “이 사건의 정보 공개를 통해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을 보다 원활히 파악할 수 있고, 행정기관 역시 공개된 정보를 기초로 참사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세월호 참사 관련 청와대 문서를 대통령 기록물로 볼 수 없다며 송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 서울고법 재판부는 해당 문서가 대통령 기록물에 해당하고, 대통령 기록물법이 정한 공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심 결과를 정반대로 뒤집었다.
대법원은 이날 “보호기간 설정 행위의 효력 유무에 대한 사법심사가 대통령 기록물법에 의해 배제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면서 “원심 판단에는 이 사건 정보에 대한 대통령 지정 기록물 지정 행위의 적법 여부에 관한 판단을 누락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서울고법 판결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대통령에게 높은 수준의 재량이 인정되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하여 이뤄지는 행위인 이상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헌법상 권력분립의 원칙을 재확인했다”며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을 위해 대통령기록물법 적용 범위를 제한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