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방파제 역할’과 함께 최 대행 관련 “정치보다 경제 고려해 어려운 결정” 언급
“통화정책만으로 경제 안정 어려워, 국정 공백 지속 시 대외 신인도 부정적 영향”
이 총재는 2일 신년사를 통해 올해 통화정책 방향을 언급하면서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최상목 권한대행께서 대외 신인도 하락과 국정공백 상황을 막기 위해 정치보다는 경제를 고려해서 어렵지만 불가피한 결정을 하셨다”고 말했다.
최근 최 권한대행이 국무회의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 3인 중 조한창(국민의힘 추천), 정계선(민주당 추천) 후보자를 임명하고, 마은혁 후보에 대해서는 여야 합의가 있을 경우 임명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소견을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앞으로 우리 경제 시스템이 정치 프로세스와 독립적으로 정상 작동할 것임을 대내외에 알리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이제는 여야가 국정 사령탑이 안정되도록 협력해야 할 때”라고 부연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한국은행도 풍랑 속에서 중심을 잡고 정부 정책에 조언하며 대외 신인도를 지켜내는 방파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올해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유연하게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전례없이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통화정책은 상황 변화에 맞추어 유연하고 기민하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며 “물가, 성장, 환율, 가계부채 등 정책변수 간 상충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이어 “향후 통화정책은 입수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내외 리스크 요인들의 전개 양상과 그에 따른 경제 흐름 변화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금리 인하 속도를 유연하게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통화정책만으로 경제를 안정시키기 어렵다는 점도 짚었다. 이 총재는 “최근 들어 국제사회의 관심이 금융·외환시장 불안을 넘어 국정 컨트롤타워가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로까지 확대됐다”며 “정치적 갈등 속에 국정 공백이 지속될 경우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경제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충격이 더해질 수 있어 국정 사령탑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을 포함한 경제 시스템 전반이 정치적 프로세스에 영향받지 않고 독립적·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수출, 주식, 환율, 가계부채 등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한 환경도 조명했다.
먼저 수출은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수출 우려 배경은) 우리 수출 구조가 다변화되지 못하고 반도체, 자동차 등 몇몇 주력 상품 위주로 고착화돼 있기 때문”이라며 “특정 산업의 사이클에 따라 전체 수출의 부침이 커지는 가운데 주력 산업에서는 후발주자인 중국이 우리를 추격해 온 반면 지난 10여 년간 미래 수출을 이끌어가야 할 신산업은 개발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한 밸류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미국 주식시장이 ‘Magnificent 7’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듯, 우리도 혁신적인 새로운 기업들이 경쟁과 창조적 파괴 과정을 통해 주식시장을 이끌어갈 필요가 있다”며 “경제 부문만큼이라도 혁신을 제한하거나 기득권을 보호해 창조적 파괴를 가로막는 규제들을 하루속히 걷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밸류업 문제는 최근 높아진 환율 수준과 연관이 있다고 짚었다.
이 총재는 “지난해 900억 달러 수준의 높은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는 경상수지 흑자 규모에 상응하는 자금을 외국인과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우리 주식시장에서 빼 나갔기 때문”이라며 “우리 주식시장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아 투자자들이 떠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해외로 자금유출이 계속되면 국내시장에서는 자금조달의 어려움으로 새로운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신산업 육성과 규제 완화를 통해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밸류업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계부채 관리 정책도 이어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총재는 “경기를 고려해 비부동산 가계부채 및 비수도권 부동산 대출에 대한 미시적 조정을 검토할 수는 있겠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가계부채 증가율을 명목GDP 성장률 내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거시건전성 정책 기조는 흔들림 없이 유지돼야 한다”며 “그래야 부동산 부문이 아닌 생산적인 부문, 그중에서도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혁신 기업들에 공급해 줄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