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언론인 등 ‘수거 대상’…남북 간 국지전 유도 정황도
햄버서 회동서 수사2단 꾸려…“계엄 위해 정보사끼리 모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자신의 수첩에 ‘국회 봉쇄’ ‘북한 공격 유도’ 등 문구를 적어둔 것으로 나타났다. 별도의 수사단을 구성한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계엄 비선 의혹’이 점점 짙어지는 모습이다.
경찰청 비상계엄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은 2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노 전 사령관의 점집에서 확보한 계엄 수첩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특수단 관계자는 “수첩에 국회 봉쇄라는 표현이 있고, 정치인·언론인·종교인·노조·판사·공무원 등을 수거 대상으로 표현했다”며 “수거 대상은 아마 체포라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수용 및 처리 방법에 관한 내용도 적혀있다”고 했다.
이어 “수첩에는 ‘북방한계선(NLL)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표현도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계엄 선포를 앞두고 북한의 오물풍선을 명분으로 남북 간 국지전을 유도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이른바 ‘북풍(北風)’을 이용해 군사적 긴장 상황을 만들고 계엄을 선포하겠다는 의혹이었는데,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특수단은 수첩에 적힌 내용이 단순 기록 차원인지, 실행 가능성이나 계획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수사할 계획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현재 적용된 혐의인 내란죄뿐 아니라 ‘외환죄’까지도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외환죄는 외국을 향해 자국에 무력행사를 하도록 유도하는 등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범죄를 말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9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을 외환죄 혐의로 경찰에 추가 고발했다.
아울러 특수단은 노 전 사령관이 일명 ‘햄버거 회동’에서 별동대를 꾸려 운용하려고 했던 정황을 확인했다. 특수단 관계자는 “(이달) 1일과 3일에 있던 (롯데리아) 회동은 노 전 사령관이 중심이 돼 별도의 수사2단을 만드는 모임”이라고 설명했다.
수사2단은 각 부를 나눠 3개 부를 담당하는 형태의 구조였고, 단장부터 부대원까지 총 60여 명으로 구성됐다고 한다. 특수단 관계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확보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수단은 수사2단 조직을 위한 인사발령, 행정 사항이 적힌 문서 등 2건의 관련 문건도 확보했다. 이는 정부가 생산한 공식 문서로 김 전 장관이 계엄령 선포 이후 노 전 사령관 등에게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달 18일 구속된 노 전 사령관은 경찰 조사에서 진술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단은 우선 주변인 진술을 토대로 정보사 관계자들이 계엄 사태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 등을 살펴보고 있다.
군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계엄은 결국 군인이 움직여야 하는데 정보사가 지휘관 성향 등 내부 정보를 사전에 파악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수월한 계엄을 위해 그들끼리만 모의하고, 윗선과 조직적으로 연결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노 전 사령관이 주축이 된 ‘햄버거 회동’ 참석 멤버를 보면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구삼회 2기갑여단장(준장), 김용군 전 대령(군사경찰), 정보사 소속 정모 대령 등이다. 이 가운데 두 사령관과 김 전 대령은 구속된 상태다.
향후 특수단은 노 전 사령관의 수첩 등 증거와 햄버거 회동 관계자들의 논의 내용, 진술 등을 토대로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와 연결되는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윤 대통령은 공조수사본부(공수처·경찰·국방부 조사본부)가 보낸 2차 출석요구서 우편물 수령을 재차 거부했다.
공조본은 이날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실, 부속실에 발송한 출석요구서는 ‘수취인 불명’, 대통령 관저에 보낸 요구서는 ‘수취 거절’인 것으로 우체국 시스템상으로 확인된다”며 “전자 시스템으로 보낸 공문도 미확인 상태”라고 밝혔다.
앞서 공조본은 윤 대통령에게 성탄절인 25일 오전 10시 과천 공수처 청사로 출석해 피의자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한 바 있다. 공조본은 일단 25일까지 기다린 뒤 체포영장 청구 등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