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어찌 내나”…셰프들도 울상
다른 식품들도 맛 변하고 있어
커피는 더 쓰고 코코넛은 더 싱거워져
지구온난화로 올해 글로벌 주요 고추 재배 지역에서 공급이 중단되고 가격이 급등했으며 무엇보다 고추 맛이 순해지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전 세계 요리의 향신료로 사용되는 고추는 할라페뇨, 하바네로, 버드아이를 포함해 약 4000종의 품종이 있으며 색상ㆍ크기ㆍ매운맛이 다양하다. 날씨에 민감하며 일반적으로 섭씨 25도에서 30도 사이 온도에서 잘 자란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고추 글로벌 무역 규모는 연간 약 90억 달러(약 13조 원)에 이르며 아시아가 공급의 약 70%를 차지한다.
이렇게 식탁에 없어서는 안 될 향신료인 고추가 가뭄과 홍수와 같은 극한 기상 현상이 증가함에 따라 고추 생산량과 맛에 타격을 입었다.
세계 최대 고추 생산국인 중국은 올해 태풍과 홍수로 고추 작황이 부진했다. 베이징 최대 농산물 도매시장 신파디의 데이터에 따르면 붉은 고추 월별 도매가격은 10월에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싱가포르에서 4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기업 냔양소스는 고추 조달의 어려움으로 3분기에 칠리 소스 생산량을 25% 줄였으며, 지역 슈퍼마켓 매장에 제품을 제공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또 ‘인생의 향신료(Spice of Life)’라는 이름의 칠리소스 3개로 구성된 특별 선물세트 출시도 중단해야 했다.
이에 40세의 켄 코 대표는 “고추가 남아있는 동안 즐기세요.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후이퐁식품은 올해 멕시코에서 극심한 가뭄으로 붉은 할라페뇨 고추 확보를 제대로 하지 못함에 따라 5월에 해당 소스 생산을 중단했다. 심한 열과 가뭄으로 고추가 꽃 피우지 못한 것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블룸버그는 고추 작황의 부진과 맛의 변화가 단발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식품에도 영향을 미치는 장기적인 추세라고 진단했다. 가령 고추뿐 아니라 커피는 더 써지고, 코코넛은 더 싱거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요리사들도 울상이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더 코코넛클럽’의 총괄 쉐프인 다니엘 시아는 몇 년 전에 비해 매운맛이 떨어진 고추의 풍미를 보충하기 위해 현재 고추 재고를 최대 20% 더 많이 구매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슐랭에서 밥그르망으로 지정된 태국 레스토랑(Un-Yang-Kor-Dai)의 수석 셰프 치차누나 타나윙은 고추 맛이 순해진 것이 단순히 비용이 더 드는 것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타나윙씨는 레몬그라스, 토마토, 새우 등으로 만든 태국 전통 음식 똠양국을 가르키며 “다양한 고추를 배합해 넣고 있다”면서 “원하는 만큼 매운 맛을 낸다고 고추양을 늘리면 음식 전체가 다진 고추로 뒤덮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와 질병에 더 강한 새로운 종류의 고추를 개발하고 있다. 가장 난관은 동일한 매운 맛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멕시코 유카탄주에서 농부들과 함께 토종 및 상업용 고추 품종을 생산하는 농학자 호르헤 베르니는 “끔찍하게 들리겠지만, 이 고추가 없어지면 원래 맛을 다시 낼 수 없다”면서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는 있지만 똑같지는 않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