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석유화학, '기활법'으로 사업재편 유도…세제·금융 지원 확대

입력 2024-12-23 15:52수정 2024-12-2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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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경쟁력 강화 방안 발표
고부가·친환경 소재 R&D 투자 확대
내년 상반기 후속 대책 추진

▲LG화학 여수 NCC 공장 전경 (사진제공=LG화학)

정부가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업활력법)을 석유화학업종에 적용하고 세제·고용 지원과 함께 3조 원 이상의 정책자금을 투입한다. 공급 과잉으로 구조적 불황에 빠진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자발적인 사업 재편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23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석유화학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4월 정부와 업계가 협의체를 꾸려 위기 대응 전략을 논의한 지 8개월 만에 나온 대책이다.

먼저 사업 재편 특성에 맞게 기활법을 보완한다. 앞서 정부는 8월부터 공급 과잉 업종 판단 기준에 ‘최근 4분기 영업이익률 지표’를, 사업 재편 유형에 ‘설비 감축 또는 폐쇄’를 각각 추가했다.

기활법상 지주회사 규제 유예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확대하고, 설비 폐쇄·축소·사업 양도를 승인받은 기업이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면 고용유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사업 재편 절차를 간소화하고 신속한 심사를 지원하기 위해 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간 공동 협의 채널을 운영한다.

총 3조 원 규모의 정책금융 지원도 이뤄진다. 설비투자·연구개발(R&D)·운영자금 등에 대해선 현행 금리보다 1.0%포인트(p) 이상 낮은 저리로 대출을 지원한다. 기활법에 따른 사업 재편, 합작법인 설립, 고부가 소재 기업과의 인수합병(M&A) 등에 대해선 1조 원 규모의 사업구조전환지원자금을 활용할 예정이다.

신사업 진출을 위한 M&A 시에는 수요 기업 발굴부터 검증, 인수금융 연계까지 아우르는 컨설팅을 지원한다.

지역 대책도 포함됐다. 글로벌 증설로 수익성이 악화한 나프타분해설비(NCC)는 현재 울산·여수·대산 등 3개의 석유화학 산업단지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설비 합리화 과정에서 지역 경제 어려움이 예상될 경우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을 검토하고 금융·세제·교육 등 맞춤형 지원책을 마련한다.

R&D 분야에서는 반도체·배터리·미래차 등 주력산업과 연계한 고부가 소재, 탄소 감축 핵심 기술, 글로벌 환경 규제 대응 기술 등 3대 분야에 집중한다. 내년 상반기 중 민관 합동으로 ‘2025~2030년 R&D 투자 로드맵’을 수립하고, ‘고부가·친환경 화학소재 기술개발’ 예비타당성조사 신청을 추진할 방침이다.

또한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의 지역투자보조금 지원 비율을 높이고, 조세특례제한법상 ‘국가전략기술 및 신성장 원천기술’을 발굴해 기업들의 신규 투자를 유도한다. 중소·중견기업 대상으로는 R&D 투자 전용 펀드(고부가 스페셜티 펀드)를 약 500억 원 규모로 결성한다.

생분해 플라스틱에 대한 환경표지 인증과 일회용품 규제 예외 기간을 2028년까지 연장하고, 열분해유 기반 합성수지 제품의 환경표지 인증 신설과 우수 재활용 제품 인증 대상을 지정해 공공기관 의무 구매 대상에 포함하는 등 친환경 시장 저변을 넓히기 위한 제도 손질에도 나선다.

아울러 나프타와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대한 무관세 조치를 내년까지 연장하고, 산단별 공동 시설 구축과 분산형 전력거래 활성화 등을 통해 원료·유틸리티 비용 절감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내년 초 자율 컨설팅 용역을 추진해 국내 과잉 설비 규모를 판단하고, 향후 사업 재편 우선순위를 검토한 뒤 이를 정부 지원 기준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추가적인 애로사항을 청취해 내년 상반기 후속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룬다. 실적 부진으로 기업들의 유동성이 마른 상황에서 세제 혜택과 정책금융 투입 등이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는 평가다.

한국화학산업협회는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위기 극복을 위해 범용 사업 축소 등 사업 재편과 정밀화학ㆍ배터리 소재 등 고부가가치 친환경 산업 구조로 전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정부의 속도감 있는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일각에선 기업들의 자발적인 사업 재편을 ‘측면 지원’하는 데 그친다는 점에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후속 대책이 필요하단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처럼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려면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속도감 있는 사업 재편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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