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입력 2024-12-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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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사회경제부장
뜬금없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은 공교롭게도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날로부터 딱 1000일이 되던 날이었다. 그 천일 동안의 조바심이었을까, 그 계엄으로 수십 년에 걸쳐 이룩한 민주주의는 무참히 짓밟혔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이제 이목은 헌법재판소로 향하고 있다. 국정혼란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라도 헌재는 신속한 심리와 결론을 내야 한다. ‘6인 체제’라는 헌재 구성이 추후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하지 않도록 신속한 정상화가 시급하다. 헌재는 그 천일 동안, 아니 계엄 선포후 탄핵안 가결까지 그 11일 동안 벌어진 위헌성을 신속히 판단해 국민에게 보고해야 한다.

대통령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 담화에는 21세기에는 사라졌을 법한 섬뜩한 표현이 여럿 담겼다.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는 대목에선 적의(敵意)를 넘어 살기(殺氣)마저 느껴진다. 그는 나흘 뒤 담화에선 그 대상이 야당임을 분명히 하고 야당에 ‘경고성’으로 계엄을 선포했노라고 했다.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딨느냐”며 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한 후속 담화는 아연실색하게 한다. 스스로 국정을 마비시키고 온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고도 사안의 중대성, 상황의 엄중함,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윤 대통령은 전시·사변이 아님에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엄연히 헌법에 반한다. 계엄 선포 때는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하지만 알리지도 않았다. 군과 경찰을 앞세워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봉쇄·장악하는 것도 모자라 국회의원과 여야 정치인들을 체포하려 했다. 심지어 체포 대상에는 현직 판사까지 있었다는 진술도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도 계엄군이 들이닥쳤다.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선관위 서버를 통째 뜯어오라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각각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의회와 선관위에 이어 사법부까지 그 기능을 마비하려 한 것이다.

2시간이 아니라 단 2초라도 헌법기관의 권능을 무력으로 침탈하려 했다면 그것은 명백한 위헌 행위이고 헌법 유린이다.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폭력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 헌재의 판례다. 그래서 법조계에서는 계엄 선포 전후의 대부분 과정이 그 내용은 물론 형식, 절차적 요건도 갖추지 못한 위헌이라고 입을 모은다.

윤 대통령은 ‘경고성 계엄’이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관련자들의 진술은 상당히 엇갈린다. 대통령은 “국회 출입을 안 막았다”고 했지만 출입이 막힌 국회의원이 국회 담장을 넘어 들어가는 장면을 온 국민이 생중계로 봤다. 그는 “질서 유지에 필요한 병력만 투입했다”고 했지만 그럴 거면 군이 아닌 경찰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또 “국회 해산이나 기능을 마비할 목적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직접 “문을 부수고 의원들을 끄집어 내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이 쏟아지고 있다.

윤 대통령과 국민 저변의 인식차는 국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차이로 보인다. 국가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듯한 모습은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오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무위원의 반대(몇 명이 반대했는지는 추후 밝혀질 것이다)를 뿌리치고 계엄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진두지휘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쯤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다. 그래서 ‘경고성 계엄’이라는 변명은 국민들 입장에선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궤변으로 들린다. 설혹 그것이 ‘경고성’이라 하더라도 ‘총칼’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일만은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패악질’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에 어그러지고 흉악한 짓’이다. 누구를 말함인가.

김동선 사회경제부장 matth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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