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사태가 부른 '디지털 망명'…정치인도 텔레그램 못 놓는 이유 [이슈크래커]

입력 2024-12-1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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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진종오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유상범 의원의 "상설특검 수사요구안에 수사대상으로 추경호 원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찬성하면 국힘이 추대표 수사를 요청하는 모습입니다. 표결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란 텔레그램 단체방 메시지를 살펴보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3일 밤 '비상계엄' 사태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국회의 발 빠른 움직임으로 계엄은 해제됐지만, 지난 주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한국은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는데요. 국민의 불안감도 높아진 상황입니다.

윤 대통령은 "2차 계엄은 없을 것"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진 못했습니다. 특히 계엄 선포 이후 검열에 대한 우려가 크게 확산했는데요.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침해되고, 전화나 인터넷까지도 검열 또는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겁니다.

계엄 이후 이용자가 폭증하면서 포털 사이트 카페, 온라인 커뮤니티 일부가 먹통이 된 바 있는데요. 이때 "시위 선동을 막기 위해 포털을 검열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국민 메신저 앱 카카오톡에서 '계엄' 등 일부 단어가 포함된 메시지를 전송하면 계정이 정지된다는 이야기까지 확산하면서 이 우려엔 불이 붙었죠.

물론 이는 가짜뉴스와 괴담이었지만, 일각에선 도피처를 찾아 나섰습니다. 포털 사이트와 메신저 앱들의 마비에 대비해 '텔레그램'이 뜨거운 관심을 받았는데요. 45년 만의 계엄 사태에 '디지털 망명'의 실체가 여실히 증명된 겁니다. 정치권에서도 텔레그램과 관련한 의혹이 떠오르면서 눈길을 끄는 중이죠.

▲(출처=애플 앱스토어 캡처)

계엄 당일에만 신규 설치 4배↑…검열 우려에 '디지털 망명' 급증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3일 밤 10시 27분께, 불과 한 시간여 만에 텔레그램 앱을 새로 설치한 사람은 4만 명이 넘었습니다.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계엄령이 선포된 이날 텔레그램의 신규 설치 건수는 4만576건으로 메신저 업종 당일 전체 신규 설치의 절반에 달하는 47.09%를 차지했습니다.

전날 신규 설치 건수가 9016건인 것과 비교하면 4배 넘는 증가세죠.

텔레그램 신규 설치는 계엄 정국이 오전까지 지속된 다음 날에도 3만3033건에 달했는데요. 5일과 6일에도 1만 건 넘는 신규 설치를 이어가며 메신저 분야 1위를 유지했습니다.

앱스토어 등 인기 순위 50위권이던 텔레그램은 한때 3위까지도 치솟았죠.

텔레그램 이용 추세는 국내에서 한동안 주춤한 바 있습니다. 지난달 신규 설치 1위를 차지한 메신저 앱은 네이버 라인이었고요. 당시 텔레그램은 4위에 그쳤습니다.

10월, 9월에서도 라인은 1위를 지켰으며 텔레그램은 카카오톡 다음으로 3위에 자리했습니다.

텔레그램 설치 건수가 급증한 건 계엄 영향입니다. 계엄령 선포 직후 트래픽이 폭증하면서 네이버에선 카페 댓글 작성이 제한되고 접속이 지연됐는데요. SNS를 중심으로 카카오톡 접속이 막히거나, 대화 내용이 검열당할 거라는 소문도 퍼졌습니다. 한때 웹사이트가 차단될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접속 대상을 숨길 수 있는 가상사설망(VPN) 앱들이 검색 순위권에 올랐죠.

네이버는 "트래픽 급증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장애"라며 "서비스 안정화를 위해 4일 0시 30분부터 오전 2시까지 총 90분간 긴급점검에 들어갔다"고 밝힌 바 있고, 카카오도 "개인 대화방에서 나누는 대화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국민은 표현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는 공포심을 느꼈습니다.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적지 않은 이들이 보안이 강력하다고 알려진 텔레그램으로 '디지털 망명'을 떠났는데요. 과거 카카오톡 압수수색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텔레그램이 사이버 피난처로 언급된 바 있습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에서도 포착되는 텔레그램…탈퇴→재가입 움직임까지

텔레그램이 인기를 끄는 건 뛰어난 암호화 기술 때문입니다. 특히 '비밀 대화방'엔 메시지를 주고받는 두 사람 외에는 암호화된 메시지를 풀 수 없는 '종단 간 암호화 기술'이 적용돼 있는데요. 암호화된 메시지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메시지 송신자와 수신자에게만 주어집니다. 서버에서도 내용을 확인할 수 없죠.

이런 보안성 때문에 전 세계 7억 명 이상의 이용자가 텔레그램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보안성이 뛰어나다고 알려지면서 피난처로 이름을 알린 건데요. 정치권과 관가 핵심에서도 애용하곤 합니다. 국회에서도 텔레그램 앱을 사용하는 이들이 종종 포착되는데요. 2022년 7월 국회 본회의장에선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텔레그램을 통해 윤 대통령과 소통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이른바 '체리 따봉' 이모티콘도 유명세(?)를 얻었죠.

10일에도 텔레그램 메시지가 포착됐습니다. 한 보수 유튜버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7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투표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고 싶다고 김민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에게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일요시사 보도에 따르면 한 보수 유튜버는 이날 김 최고위원에게 "오늘 한동훈,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에 대한 징계요청서를 당사에 넣으려고 하니 1층에서부터 보안팀장 및 경찰들이 '민원은 지금 안 받는다'며 막더라"면서 "혹시 넣을 방법이 있을까 해서 여쭤본다"면서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는데요. 여기에 김 최고위원은 "본회의 중이어서 끝나고 알아보겠다"고 답장했죠.

이 유튜버는 10월 23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한 대표 사퇴 촉구 집회에 참석하는 등 한 대표를 향해 비판 의견을 내던 인물로 알려졌는데요.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은 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투표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대표는 12·3 내란 사태 당시 체포 명단에 올랐고, 탄핵소추안 표결을 전후해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요구하고 있죠.

또 다른 풍경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텔레그램을 탈퇴한 후 재가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건데요. 공교롭게도 이번 계엄을 주도했거나 방조했다는 의심을 받는 이들입니다.

7일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이날 텔레그램을 탈퇴하고 새로 가입했습니다. 김 전 정관이 있던 기존 대화방은 대화 상대 이름이 사라진 채 '탈퇴한 계정'이라고만 표시됐죠. 그는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로, 이번 비상계엄 선포를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대통령과 함께 사실상 주도한 인물로 꼽힙니다. 이에 텔레그램 기존 계정의 대화방에 계엄 모의 정황 등이 남아있을 수 있는 만큼 '증거 지우기'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됐죠. 수사가 시작되자, 김 전 장관은 액정 파손을 명목으로 휴대전화를 교체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도 같은 날 텔레그램 계정을 없애고 새로 가입한 것으로 전해졌고요. 김건희 여사의 텔레그램도 10일 삭제됐다는 보도가 나와 윤 대통령, 대통령실 고위 참모 등과 수사 대비에 나섰다는 관측이 이어졌죠.

▲(EPA/연합뉴스)

텔레그램 보안, 완벽할까?

텔레그램의 보안성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 데엔 폐쇄적인 방침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창립자 파벨 두로프의 견고한 '정치적 중립' 입장에 따라 각국 수사당국의 협조 요청을 무시하는 게 일상(?)이었는데요. 당초 텔레그램이 시작된 계기도 정부 억압을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니콜라이와 파벨 두로프 형제는 이들이 설립한 또 다른 SNS 프콘탁테(VK)로 이름을 알렸는데, VK는 2011년 러시아 총선과 대선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규탄하는 시위 정보가 확산하는 창구 기능을 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이들에게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이용자들의 신원을 제공하고 해당 커뮤니티를 폐쇄하라'는 취지로 요구했는데요. 이들은 이를 거부하고 러시아를 떠나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이때 설립한 게 텔레그램이죠.

이런 보안성과 폐쇄성을 앞세운 텔레그램은 온갖 범죄에 이용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마약·밀수 등 범죄에 텔레그램이 악용되는 사례가 늘자, 프랑스 정부는 8월 범죄 방조와 가짜 정보 유통 방치 등 혐의로 두로프를 전격 체포했죠.

텔레그램은 두로프의 체포에 '말도 안 된다'며 항변했지만, 이내 태세를 전환했습니다.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온 일부 기능을 삭제하는가 하면 서비스 약관과 개인정보 보호정책을 갱신한 겁니다.

심지어는 규정을 어긴 사람들의 정보를 '법적 요청을 받으면 제공하겠다'고까지 공언했는데요. 두로프가 직접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밝힌 내용입니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 정례 기자회견에서 텔레그램과의 수사 협력 방안을 공식화 했죠.

더군다나 디지털 포렌식 분석 기술까지 나날이 발전하면서 전문가들도 "완벽한 보안은 없다"고 잘라 말하는 상황인데요. 앱을 삭제해 대화방을 폭파한 경우도 복원 작업이 까다로워지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마냥 불가능의 영역도 아니라는 겁니다.

디지털 피난처로 통하는 텔레그램과 같은 앱도 결코 완벽한 비밀의 공간이 돼주지 못하는 셈인데요. 추후 수사 절차에 따라 드러날 '말'들이 있을지, 이미 국민의 눈길이 한곳으로 쏠린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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