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원 종신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을 설명하며 이같이 밝혔다.
맛손은 "그의 글에선 두 가지 색이 만난다. 바로 흰색과 빨간색"이라며 "그의 소설에는 눈이 내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보호의 장막이 우리의 세계와 주인공을 감싸는데, 흰색은 슬픔과 죽음의 색깔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빨간색은 삶과 고통, 유혈 그리고 칼의 상흔을 상징한다"라며 "겹겹이 쌓인 시신에서 피가 흐르고, 어두운 장막이 드리우는데 작가는 우리에게 호소하면서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진다"라고 말했다. 그 질문은 '우리가 죽은 사람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로 수렴한다.
맛손은 "그의 작품은 죽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어떤 빚을 졌는지 질문한다"라며 "흰색과 빨간색은 역사적 경험을 상징하며 한강 작가 작품의 중요한 주제"라고 부연했다.
이날 시상 연설에서 맛손은 특별히 한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언급했다. 이 소설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인 제주 4·3 사건을 다루고 있다. '경하'와 '인선', '정심'이라는 세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한 작가는 세 여성의 발걸음을 통해 비극의 역사로 희생된 자들을 애도하고, 남은 자들을 치유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맛손은 "이 소설에서 눈이 창조한 공간은 만남의 장으로서 산 자와 죽은 자가 조우하게 된다"라며 "일부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배회하며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의 소설에서 산 자와 죽은 자는 소통하고,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 지식의 추구와 진실의 탐구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하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전했다.
또한 "꿈이 현실이 되고, 과거가 현실이 되는 등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이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며 "특히 '소년이 온다' 속의 살해된 소년이 생존자에게 질문하는데, 이는 고집스러운 저항과 강한 의지, 기억하려는 본능"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설정은 우리가 과거를 잊어서도 안 되고, 잊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는 게 맛손의 설명이다.
시상 연설이 종료된 후 맛손은 무대 좌측에 앉아 있는 한 작가를 무대 중앙으로 호명했다. 담담한 표정의 한 작가에게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이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수여했다. 두 사람은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악수를 했고, 그제야 한 작가는 환하게 웃었다.
수상자들의 특성에 맞게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증서는 '고유한 예술 작품'으로 불린다. 특히 문학상 증서는 수상자나 작품 특성을 반영해 제작된다. 시상식 이후 마련된 연회에서 한 작가는 간단한 수상 소감을 피력할 것으로 보인다.
시상식이 끝난 11일 한 작가는 국내 기자들과 회견을 하고, 현지 다문화 학교를 방문한다. 이날 행사에는 여러 국적 출신의 학생들이 한강의 작품을 읽고, 소감문을 발표하는 시간이 예정돼 있다.
12일 왕립극장에서 열리는 낭독회를 끝으로 한강의 공식 일정은 마무리된다. 이날 낭독회에서 한강은 스웨덴의 번역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유키코 듀크와 대담을 진행한다. 아울러 현지 배우들이 한강의 작품을 낭독하는 시간도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