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의료공백 해결 조건 없는 대화부터

입력 2024-12-11 06:00수정 2024-12-1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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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 발표로 촉발된 의정(醫政) 갈등과 의료공백 상황이 해를 넘길 전망이다.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들은 휴학으로 맞섰다. 대한의사협회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의대 교수 등 의료계는 다양한 의견을 내며 정책 재검토를 주장해 왔다.

의료공백 상황에 환자들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현장 의료진도 과중한 업무 부담에 지쳐갔다. 주요 대형병원은 연이은 경영난에 무급휴가 실시 등 허리띠를 졸라맸다.

정부는 대화의 장이 항상 열려 있다며 의료계가 소통에 나설 것을 지속해서 요구해 왔다. 정부와 여당, 의료계 일부에선 정부와의 대화, 토론회를 통해 꼬인 실타래를 풀고자 대화를 이어왔다.

하지만 대화는 단절됐고, 소통 창구는 사라졌다. 어렵사리 구성한 ‘여야의정 협의체’는 대한의학회 등이 참여 중단을 선언하며 20일 만에 중단됐다. 정부와 의료계 간 의대정원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그나마 있던 소통 창구도 12월 3일 이후 문을 닫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이어진 포고령에 의료계는 “윤석열 퇴진, 의료농단”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대한병원협회 등은 사회적 협의체인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

문제는 의료공백이 해를 넘겨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9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5년도 상반기 전공의 레지던트 1년차 모집 마감 결과, 지원율이 8.7%에 불과했다. 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인턴 3356명과 레지던트 1년차 3594명 채용 계획을 공고했으나, 수련병원별로 이달 4일부터 모집한 결과 총 314명(수도권 193명, 비수도권 121명)이 지원했다.

전공의가 떠난 주요 수련병원의 현재 상황도 좋지 않다. 진료의 한 축이던 전공의 비중이 대폭 감소하고 있어서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211개 수련병원 전공의 전체 출근율은 8.7%(1만3531명 중 1171명)에 불과했다. 인턴의 경우 211개 수련병원에서 3068명 중 102명으로 출근율은 3.3%다. 또 211개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레지던트는 1만463명 중 1069명으로 출근율은 10.2%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으로 소위 빅5 대형병원인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의 의사 인력 중 전공의 비율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의사 인력 중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12월 기준 최저 33.5%(서울성모병원), 최대 46.2%(서울대병원)였으나 올해 9월 기준 서울대병원 7.5%, 서울아산병원 3.2%, 삼성서울병원 5.2%, 세브란스병원 5.1%, 서울성모병원 6.4% 등으로 대폭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설상가상·雪上加霜). 지금도 전공의들이 부족한데 내년도 신규 전공의마저 부족할 것으로 예상돼 의료공백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탄핵 정국에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의 장을 만들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환자의 생명을 생각한다면 의료계와 정부는 다시 한번 아무 조건 없이 허심탄회하게 귀를 열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의료계는 ‘원점 재논의’, ‘증원 철회’만을 고집하지 말고 증원 조정을 비롯해 필수·지역의료 강화, 수가체계 현실화 등 논의 가능한 것부터 대화의 물꼬를 다시 틀 수 있다. 정부도 ‘원칙 고수’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의료계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해주길 당부한다.

필자는 예전 칼럼에서 30여 년 전 ‘의약분업’ 도입이라는 결과는 당시 수년에 걸친 사회적 대화와 합의 도출을 위해 상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 ‘이해관계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모으고, 서로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그간 정부와 의료계 간 꼬인 실타래를 풀지 못했던 이유야 많겠으나, 대화의 시작은 양보에서 타협은 상대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는 것을 의료계와 정부가 되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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