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불확실성 장기화에 커지는 금융시장 변동성
정부, 금융지주ㆍ은행에 "유동성ㆍ건전성 고삐" 주문
신용도 낮은 개인사업자ㆍ중기 등 외면 가능성 커져
연내 은행권 소상공인 맞춤형 금융지원안부터 마련
탄핵 정국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당장 대출이 절실한 저신용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치리스크로 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된 가운데 은행들이 건전성 관리를 위해 우량 자산 확보에 집중하고 대출 심사를 더욱 까다롭게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대출 절벽에 내몰린 영세 자영업자들이 사금융으로 옮겨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은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하고 유동성·건전성 관리를 위한 점검에 나섰다. 지주에서 각 자회사들에 자금조달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 관리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라는 지침도 내려왔다.
은행들은 위험가중자산(RWA)을 줄여 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노력에 적극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부실 위험이 큰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 등 취약층의 대출 절벽이 더 가팔라질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특히 최근 시장 여건상 회사채 발행도 여의치 않은 탓에 대기업들이 은행에서 돈을 조달할 경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상 대출은 대기업 대출보다 위험가중치가 높기 때문이다. 대출이 나가더라도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높은 차주 순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이미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실행과 연말 스트레스완충자본 도입이 예견된 상황에서 은행 대출 문턱은 높아진 상태다. 주주환원율을 확보하고, 건전성 강화를 위해 적립해야 하는 추가 자본 규모를 줄이려면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올 10월 취급된 일반 신용대출의 평균 신용점수는 897.3점으로, 지난해 10월 872.4점보다 24.9점가량 높아졌다. 깐깐해진 심사에 대출받는 이들의 신용점수 허들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올 8~10월 신용대출을 받은 개인사업자의 평균금리는 연 5.70%로 7~9월의 평균금리 연 5.66%보다 높아졌다. 금리를 낮춰 대출 영업에 나서기보다 상환을 통한 ‘건전성 관리’에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위험가중자산을 줄이려는 모습은 최근 주요 은행의 개인사업자, 중소기업 대출 잔액 추이에서도 드러난다. 지난달 5대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327조104억 원으로 전월 말과 비교해 2050억 원 줄었다. 이 영향으로 중기 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2254억 원(0.03%) 확대되는 데 그쳤다. 직전 달 증가 폭인 3조9724억 원(0.6%) 대비 급감한 수치다.
시장에서는 은행권이 취약층에 대한 별도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빠르게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이른 시일 내 나올 대책은 소상공인 대상 금융지원안이다. 앞서 은행권은 금융당국과 협의해 연내 소상공인을 위한 지속가능한 맞춤형 지원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은행연합회가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채무조정과 보증·대출 등 구체적인 지원방식과 규모 등을 마련 중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전날 열린 ‘긴급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은행권에서 검토 중인 금융지원 방안도 연내 마련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도 이날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이달 중 발표하기로 한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부담 완화 대책을 일정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