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보험료 산정 과정서 착오 발생..."통렬히 반성한다"
"미진한 부분, 크로스체크 방안 마련 등 좀 더 다듬어가겠다"
통계청이 5일 공표 예정이었던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당일 아침 돌연 취소했다. 산식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장기요양요율에 퍼센트(%)를 제외한 값을 넣으면서 수치 오류가 발생해서다. 공표 당일 통계 오류가 발견돼 공표 및 언론보도가 전면 취소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5일 통계청은 오전 9시 15분경 기자단에 "금일 보도 예정인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보도자료 중 수치 오류로 인하여 보도계획을 변경하오니 기 배포된 보도자료는 사용하지 말아 주시고 폐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해당 보도자료를 배포한 지 45분 만이다. 통계청은 관련 브리핑을 오전 10시에 진행할 예정이었다. 보도 및 공표 시점은 낮 12시였다.
가계금융복지조사는 가계의 자산, 부채, 소득, 지출 등을 통해 재무 건전성을 파악하고 경제적 삶의 수준·변화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통계청,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공동으로 작성하는 '소득분배지표 공식 통계'이기도 하다.
통계청은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번 공표 연기 경위를 설명하고 입장을 밝혔다. 문제가 발생한 데이터는 '장기요양보험료'였다. 지난해 장기요양보험료 산출 산식 변경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겼다.
가계금융복지조사는 조사자료 외 30여 종의 행정자료를 연계해 데이터를 작성하고, 자료가 부족해 연계가 안 되는 가구는 별도 산식을 적용해 추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번 조사에서 4만1000 가구원 중 행정자료와 연계가 되지 않는 551가구 원을 대상으로 장기요양보험료를 추정했다. 이 과정에서 장기요양보험료율 0.9082%(0.009082)를 적용해야 하지만, 퍼센트(%)를 빠뜨린 채 이보다 100배 큰 0.9082를 넣어 산출한 것이다.
박은영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2023년도에 장기요양보험료 산출 산식이 변경됐는데 이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퍼센트 부분을 적용하지 못하고 계산하는 착오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장기요양보험료 값이 실제보다 100배 높아져 장기요양보험료가 포함된 건강보험료와 공적연금, 비소비지출, 처분가능소득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수치 오류가 발견된 건 '검증 시스템의 허술함' 때문이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산식을 통해 도출된 데이터 값에 대해서는 여러 단계에 걸쳐 교차로 검증한다"고 밝혔다. 다만 산식 자체에 대한 교차검증이 이뤄졌는지를 묻는 말엔 "산식을 짜는 부분은 별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코딩 영역이라 이를 다른 사람이 검증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산식을 입력한 담당 실무자가 본인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잘못된 통계 수치가 그대로 공표될 수 있었단 얘기다.
다만 통계청은 '담당자 개인의 산술 입력 실수라면 비슷한 사례가 더 있었을 수 있지 않냐. 과거 국가 통계에 대해서 전수조사를 진행할 것이냐'는 질문에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답했다. 서경숙 통계청 대변인은 "통계 공표와 함께 마이크로데이터가 공개돼 많은 이용자가 접근해 사용하게 된다"며 "에러가 발생한 경우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번 통계 오류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여파가 아니냐는 지적엔 "연간 조사인 만큼 통계표 자체는 이미 한 달 전에 나와 있던 상황"이라며 "계엄과는 무관한 실무적인 실수"라고 말했다.
해당 자료는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공동으로 작성하는 연간 지표다. 3개 기관이 공동 작성하는 지표에서 공표 당일 오류가 발견돼 일정이 연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의 공식 소득분배지표 발표가 미뤄지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 연구와 부가 조사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사상 초유의 중대한 오류가 발생하면서 통계청에 대한 국민 신뢰도 저하도 불가피해 보인다. 박 과장은 "통계를 정확히 발표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해 통렬히 반성한다"며 "미진한 부분은 내부적으로 크로스체크 방안을 마련하는 등 좀 더 다듬어가겠다"고 말했다.
가계금융복지조사 통계는 최종 검수 과정을 거쳐 이달 9일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