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는 거예요. 궁금하니까”...‘현장’에 푹 빠진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

입력 2024-12-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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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이 지난달 28일 의장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의회

지난달 26일 새벽 3시 30분.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이 도봉산역광역환승센터에서 출발하는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에 올라탔다. 전날 경남 사천에서 ‘한강버스’ 진수식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와 잠깐 눈을 붙인 후였다. 비서진은 나중에 가보셔도 된다고 했고, 누가 와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지만 최 의장은 첫 운행을 시작한 자율주행버스 ‘현장’이 무척 궁금했다.

“세상에, 3시 50분쯤 수유동에서 어르신 두 분이 버스를 타는데 강남쪽으로 청소를 하러 가신다는 거예요. 버스를 세 번 갈아타는데 그동안 앉을 자리가 없어 많이들 싸우셨대요. ‘고맙다’, ‘이런 버스 더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마음이 짠했어요. 진짜 더 신경 써야겠다 싶더라고요.” 궁금해서, 들으려고, 또 격려를 위해 부지런히 ‘현장’을 찾고 있다는 그를 지난달 28일 의장실에서 만났다.

올 7월 서울시의회 68년 역사상 첫 여성 의장에 선출된 그는 3선의 베테랑이지만, 요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평의원일 때 상임위원회 관련 일이랑 지역만 다녔는데 의장이 되고 난 후 활동반경이 넓어졌어요. 서울 전체를 보면서 꼭 필요한 곳을 찾아가 보고 느낄 수 있게 됐지요. 그동안 막연했던 일이 현실로 확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된 거예요.”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이 11월 15일 서울교통공사 신정차량사업소를 방문해 내부 정비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의회

어느 현장을 갈지는 사전에 계획된 것도,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신문을 보다가, 또 행정사무감사를 지켜보다가 진짜 문제가 있는지, 잘 진행되고 있는지 가봐야겠다는 느낌이 오면 ‘깜빡이’ 없이 직진하는 ‘행동파’다. 그렇게 ‘자원’해서 나간 현장만 취임 후 10곳이 넘는다. 지난달 서울교통공사 신정차량사업소 방문도 신문 기사를 보다가 ‘꽂힌’ 경우였다. “노후 전동차를 교체하는데 납품을 지연하는 업체가 계속 발주를 하고, 그런 회사에서 만든 전동차가 불량이 돼서 차량기지에 방치돼 있다는 거예요.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가본 거죠.”

신용산초등학교에 찾아가 문해력·수리력 진단검사 의견을 청취한 것도 아이들 기초학력이 떨어졌다는 기사를 본 게 계기가 됐다. 신혼부부들이 거주할 장기전세주택의 규모가 작다는 얘기를 듣고 송파구 공공임대주택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빌트인 가구들을 최적화해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면 좋겠다”며 ‘참견’도 했다.

최 의장은 당장 5일에도 서울시소방학교를 찾는다. “점심 먹어 보려고요. 이번 행정사무감사에서 도시안전건설위원회 소속 의원이 지적하셨어요. 소방관들 점심이 소홀하다고요. 소방관들 한 끼 식사가 평균 4600원이라는데 인건비 등 빼면 음식 재료비 1600원 남는대요. 말이 안 되지요.”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이 11월ㄹ 6일 늘봄학교를 운영 중인 신용산초등학교에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의회

원래 ‘관심사’를 챙기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전임 박원순 시장을 상대로 시정질문을 하면서 쓰레기 분리수거, 재활용 문제를 줄기차게 지적했던 그는 10월 잠실야구장과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다회용기 사용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교육현장에 대한 애정도 깊다. 의장 취임 후 가장 먼저 방문한 곳도 올해 2학기부터 전국 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시행된 늘봄학교(고척초등학교)였다. “늘봄학교가 있어 맞벌이를 할 수 있다는 학부모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어요. 내년에 2학년까지 지원 대상이 확대되는 만큼 조만간 다시 현장을 방문해 인력과 교실 확보 등을 꼼꼼하게 챙겨볼 생각입니다.”

때론 지금 가장 가봐야 할 곳이 어딜까 떠올려도 본다. 역대급 폭염으로 힘겨웠던 올여름, 딱 하나뿐인 여경기동대인 서울경찰청 제1기동단 15기동대도 그렇게 찾아갔다. “시위가 많았잖아요. 그 더위에 출동하고 그러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격려하고 싶더라고요.” 추석 땐 어디 계신 분들이 가장 슬플까 생각하다가 시립동부노인전문요양센터로 달려갔다.

현장을 둘러보기만 하는 건 아니다. ‘후속조치’를 곁들인다. “기초학력진단은 본예산에 반영했고, 자율주행버스랑 소방학교 점심은 예산 지원하려고 해요. 노후 차량 교체 관련 발주 지연한 업체에는 패널티 주는 걸로 기준을 조정해볼 생각이고요. 다회용기 뚜껑이 불편하다는 얘기를 듣고 업체에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고, 여경기동대 출동할 때 차량이 부족하다길래 서울경찰청장한테 전화해 검토해달라고 했어요.”

최 의장은 “현장에 가서 사태를 파악하고 나면 어떤 부분에선 반드시 방법이 생긴다”며 “물론 다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압박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딴 건 몰라도 그런 힘이 생겨서 너무 좋다”며 미소지었다.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이 7월 8일 서울경찰청 제1기동단 15기동대를 방문해 여경들과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의회

‘현장’에 푹 빠져 지내는 그는 의장으로 처음 맞은 행정사무감사(지난달 4~17일)도 꼼꼼히 지켜봤다. “의원들이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평할 수 있어요. 작년에 287건이었던 보도자료가 이번에 421건 나왔어요. 정책 지원관도 부족한데 진짜 열심히 한 결과예요.” 이번 행감에서는 홍보용 굿즈 특혜 의혹, 사업 추진이 미진한 남산 곤돌라 사업, 주먹구구식 세입추계 관행 등 서울시정 전반에 대한 송곳 지적이 이어졌다. 다만 일부 의원들의 ‘고압적’ 태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지적이 있다고 하자 최 의장은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답을 늘어놔 시간을 잡아먹으려는 게 보이기 때문일 수 있다”면서도 “시민들은 설명을 더 듣고 싶어하실 수도 있을 테니 합리적 조율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감시와 견제에 충실하지만, ‘협치’에 대한 믿음도 크다.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케미’를 묻자 “오 시장은 합리적면서도 어려운 사람을 생각할 줄도 알고 세계 속에 매력 있는 서울을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며 “시정 핵심과제는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출생, 주택 공급 등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의회 차원에서 지원사격에 나섰다. 보건복지위원회, 교육위원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등 다수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저출생 고령사회 문제극복을 위한 특위’를 구성해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정비 사업이 진통을 겪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서울시 정비사업의 행·재정 지원 효과를 점검하는 연구 용역’을 최근 발주했다. 지역주민의 선호를 고려한 주거지 공급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지원 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다.

마포구 쓰레기 소각장 지원 방침도 재확인했다. 최근 국회에서 마포 신규 소각장 국비 지원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서초구도 화장장 받아들였잖아요. 필요하니까 4기 추가 증설했어요. 2026년부터 수도권에서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전면 금지되는데 소각장 필요하지요. 물론 친환경적으로 짓고 소각 용량도 줄여야겠죠. 이 문제가 오랜 기간 논의를 통해 결론이 난 건데 국비 지원 못 받게 되면 시비로 일단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겁니다.”

지난달 진보 교육감 당선으로 불협화음이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에는 “긴밀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근식 교육감이 당선 되자마자 시의회에 제일 먼저 오셨고, 시정질문을 보니까 기초학력 향상시키겠다, 교육격차 극복하겠다는 생각도 확실하신 거 같더라고요. 학생 인권도 교권이랑 함께 보장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니까 시의회랑 생각이 다르지 않으신 거 같아요. 전임 교육감이랑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기대가 돼요.”

소통을 통한 해결도 우선하려고 한다. 특히 2021년 11월부터 시의회 앞을 불법 점유하고 있는 세월호 기억공간에 대한 시민 피로감이 늘고 있다고 하자 “언제까지 불법을 방치할 수는 없지만 힘을 통한 강제 철거를 바라지도 않는다”면서 “안산에 다녀왔는데 공원이 2027년 완성된다고 해요. 그때까지 변상금을 납부한다고 하니 협의를 하고 있어요.” 대집행은 없을 거란 의미다.

지방의회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다짐했다. 최근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서울시의회와 경기도의회에 3급 기구 설치가 결정됐다. 최 의장 취임 직후 국회와 정부에 가장 먼저 건의했던 지방자치 개선 과제였던 만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서울시의회는 19개 과에서 430명이 근무하는 큰 조직인데 1급 사무처장 1인이 총괄하기엔 한계가 있고요. 4급에서 3급으로 승진할 기회가 없으니 희망도 없지요.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건데 시민들이 시의회 역할을 더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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