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중중 기준 확립하고 예산 대폭 늘려야

입력 2024-11-2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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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와 정부 신뢰 회복하고 ‘박리다매’ 생존방식 탈피해야

▲26일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강당에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의 쟁점과 전망: 왜곡된 의료이용체계 개혁, 근본 해법인가, 미봉책에 그칠 것인가’ 토론회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상급종합병원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중증 기준’과 ‘예산’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26일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강당에서 열린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의 쟁점과 전망: 왜곡된 의료이용체계 개혁, 근본 해법인가, 미봉책에 그칠 것인가’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러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상급종합병원 소속 교수들과 종사자들은 중증 환자에 대한 기준을 확립하고, 구조전환에 지속해서 투입할 예산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의료기관은 규모와 기능에 따라 의원,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으로 구분된다. 소위 수련병원, 대학병원 등으로 불리는 의료기관이 대개 상급종합병원에 해당한다. 의원은 이른바 ‘동네 병원’으로 불리며 환자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차의료를 담당한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및 응급환자, 희귀질환자 등을 진료하고 전공의 수련과 연구도 수행한다.

정부는 현재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증 환자 진료를 줄이고 상급종합병원 본연의 역할을 정상화하는 것이 사업의 취지다.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의 약 90%인 42개 기관이 구조 전환에 참여한다. 참여 병원은 경증 환자 진료를 줄이면서 중증·응급·희귀질환 중심 역량을 강화하고 전공의 수련과 연구 기능도 발전시킬 예정이다. 이미 42개 상급종합병원은 중환자실, 소아·고위험 분만·응급 등 유지·강화가 필요한 병상을 제외한 총 3186개 일반병상을 감축했다.

▲옥민수 울산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울산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강당에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의 쟁점과 전망: 왜곡된 의료이용체계 개혁, 근본 해법인가, 미봉책에 그칠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너도나도 중증환자…중증 70% 수치도 근거 없어

옥민수 울산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울산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는 상급종합병원의 중증환자 비율이 얼마가 적당한가에 대한 전문적인 논의가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목표로 언급되는 70%는 상징적인 수치일 뿐,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또한 중증환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

옥 교수는 “앞으로는 학회들이 각자 자신이 보는 질환의 중증도 분류에 대해 정확성 문제를 지속해서 제기할 것”이라며 “적합질환군 비중이라는 지표에만 의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전체 중증도의 합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상급종합병원의 지역 친화도에 대한 고민도 충분하지 않다. 지역완결적 의료체계를 구축해 특정 지역 내 암, 심뇌혈관, 중증외상 환자들이 다른 지역 상급종합병원을 전전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와 의료계의 숙원사업이지만, 지역 간 의료격차를 완화할 획기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진료협력 수준의 고도화도 시급하다. 이번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은 ‘지역완결적 협력네트워크 확립’ 목표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언급되지 않았으며, 참고할 수 있는 유사 지원사업도 없다.

옥 교수는 “상급종합병원과 책임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조정과 협력이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아직 상급종합병원이 책임의료기관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진료 의뢰를 위한 단순 정보 전달 사업에 그치지 않고, 서비스 조정의 책임자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장원모 서울대 보라매병원 공공의학과 교수가 26일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강당에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의 쟁점과 전망: 왜곡된 의료이용체계 개혁, 근본 해법인가, 미봉책에 그칠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수련환경 지원 예산 부족해 실효성 의문…무너진 신뢰 회복 까마득

수련환경 개선과 관련해서는 비용이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됐다. 현재 의료질평가지원금제도 내 교육수련 영역의 평가 결과로 지급되는 지원금은 입원과 왜래 영역이 각 300억 원, 총 6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이를 2021년 기준 45개 상급종합병원이 배분받았다고 가정하면, 기관별로 약 13억 원이다. 상급종합병원 내 전문 과목 수를 고려하면 각 과에 주어지는 지원금은 수련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불가능한 수준으로 적다.

옥 교수는 “교육 및 수련 영역에 초점을 두고 더 큰 규모의 평가체계와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해야 실효성 있는 수련환경 지원이 가능하다”라며 “그동안 수많은 대책이 논의됐지만 사실상 진전이 없었던 것은 예산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의료계와 정부의 신뢰 회복도 난제로 남았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으로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이탈한 이후, 의료계와 정부 사이에 제대로 소통할 수 없는 상태가 장기화했다는 우려다.

장원모 서울대 보라매병원 공공의학과 교수는 “많은 전공의가 지금 상황에서 달라진 점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수련병원으로 돌아올 명분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라며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신뢰 자본이 완전히 붕괴해, 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또 장 교수는 “의료계와 정부가 마주 앉아 협상이 가능한 최소한의 신뢰 임계점을 어떻게 만들지, 이를 만들 수는 있을지 걱정된다”라고 우려했다.

미래의 의료환경 변화와 지속성을 고려한 의료개혁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현재의 상급종합병원 구조는 이른바 ‘박리다매’ 형태로, 지속성이 없으며 전공의들이 중증질환을 기피하도록 만든다는 진단이다.

박종훈 한국병원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과대학 교수)은 “단순히 인력 구조조정, 획일적인 병상 축소, 의료전달체계 강조만으로는 지역 사이에 균형 있는 의료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라며 “현행 병원 제도는 모든 것이 지표관리에서 시작해서 지표관리로 끝나며, 병원 종별로 수가가 달라 평가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병원들이 양질의 의료를 위한 변화를 시도할 겨를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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