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ㆍ처방 잘못된 상법 개정 논의 중단해야" 재계 한목소리

입력 2024-11-2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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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협ㆍ재계, 9년 만에 긴급 성명 발표
"이사 충실의무 확대는 '교각살우'의 우 범하는 것"

▲김창범(앞줄 가운데)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 등 주요기업 사장들이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 발표를 위해 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이날 성명에는 박승희 삼성전자 사장,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 김동욱 현대차 부사장, 차동석 LG 사장 등 16개 그룹 사장이 참석했다. 조현호 기자 hyunho@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은 21일 "기업의 경영 합리화를 위한 사업재편 과정에서 소수 주주 이익에 영향이 미치는 사안이 있을 경우엔 '핀셋' 접근이 필요하다"며 "환부에 메스를 대고 제거하든 치료를 하든 해야지, 팔다리 전체에 손을 대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경제계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삼성ㆍSKㆍ현대차ㆍLGㆍ롯데ㆍ한화 등 16개 그룹 사장단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을 발표한 뒤 진행한 질의응답에서 "소수 주주 보호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상법 개정으로 해결하는 것은 진단과 처방이 잘못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와 관련해 경제계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는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사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많은 기업은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시달려 이사회의 정상적 운영이 어려워지고, 신성장동력 발굴과 인수합병(M&A) 등 신사업 투자 활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며 "결국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고, 이는 우리 증시의 밸류 다운(가치 하락)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사의 의무를 확대하는 상법 개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 등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부회장은 "합병이나 분할 등 기업의 사업 재편 과정에서 소수주주 이익이 침해됐던 사례마다 그 제도(이사 충실의무 확대)가 없어서 발생했다고 얘기하긴 어렵다"며 "특정 상태에서 주주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맞춤형 개선, 일종의 핀셋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합병 과정에서 소수주주 이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면 각 기업가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합병 비율 산정 방식을 개선하거나, 물적분할 자회사가 상장할 때 모회사 주주들에게 자회사 신주를 우선 배정하는 식의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소수주주 이익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기업들이 상법 개정이라는 특정한 입법 사안을 놓고 이렇게까지 호소를 해야 할 만큼 시급한지, 그동안 상법 개정 논의에 지배구조와 관련한 사안이 없어 증시가 '트럼프 랠리'조차도 비껴갈 정도로 하락세를 보이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주에 민주당 증시 활성화 태스크포스(TF)에서 경제단체와 주요 기업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할 거라고 하니 충분히 의견 수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장단은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한 기업 차원의 다짐을 밝히는 한편, 정부를 향해선 과감한 규제 개혁과 아낌없는 지원을 요청했다.

이들은 "신사업 발굴과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고, 신시장 개척과 기술 혁신에 집중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중소기업 기술 지원, 국내 수요 촉진 등 자영업과 민생 경제를 살릴 방안을 적극 추진해 내수 활성화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또 "혁신을 통해 기업의 성장성을 개선하고 주주가치 제고,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한국 증시의 매력도를 높여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과감한 규제 개혁을 추진해 주시고, 인공지능(AI)ㆍ반도체ㆍ배터리ㆍ모빌리티ㆍ바이오ㆍ에너지ㆍ산업용 소재 등의 분야에 힘을 더해달라"며 "보호무역주의 분위기 속에서 각국이 첨단 산업 지원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만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지원을 서둘러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성명 발표에는 김 부회장을 비롯해 박승희 삼성 사장, 이형희 SK 위원장(사장), 김동욱 현대차 부사장, 차동석 LG 사장 등 16개 그룹 사장이 참석했다. 주요 기업 사장단은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긴급 성명을 발표한 바 있지만, 이번처럼 특정 법안을 놓고 한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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