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공약 '화석 경제 부활' 뒷받침
중동 의존도 낮춰 에너지 안보 강화 효과 및 트럼프 관계 관리도
가스공사, 미국 가스 장기계약 체결 가능성…석유 도입선 다변화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무역적자 해소를 통한 경제 재건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가운데 미국의 8대 적자국 가운데 하나인 한국 정부가 대미 무역수지 균형을 위해 가스를 중심으로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0일 정치권과 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트럼프 신정부 출범을 앞두고 공공·민간 차원에서 원유와 가스 등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늘릴 다양한 실행 방안을 놓고 고민 중이다.
통상 당국은 트럼프 신정부가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를 문제 삼아 통상 압력을 가할 것으로 보고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가 효과적 대응 방안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심각한 무역 적자 국이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지난해 444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으며, 올해 1∼9월 역시 399억 달러를 기록, 최대 기록 경신이 유력하다.
트럼프 당선인이 핵심 경제 공약으로 '화석 경제 부활'을 내세우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산 원유와 가스 등 에너지 수입 확대는 미국 신정부로부터 상당한 환영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화석 경제'를 부흥해 자국 내 에너지 가격을 확 낮춰 국민 부담을 낮추고, 에너지 수출도 늘려 미국의 무역수지를 개선하겠다는 게 트럼프 당선인의 구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 가중, 미국산 에너지 가격 하락 전망 등 제반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미국산 에너지 구매 확대로 대미 관계 관리를 넘어 경제안보 강화와 경제적 실익까지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고 본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미국산 에너지가 중동산에 비해 물류비용이 더 비싸고, 운송 기간이 길다는 단점은 있지만 단가 측면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와 미국 셰일가스가 중동산보다 싸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는 중동과 달리 미국은 정치적으로 안정돼 공급 역시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작년 한국은 전체 원유와 가스 중 각각 13.5%, 11.6% 미국에서 들여왔다. 작년 기준 미국은 우리나라의 2위 원유 도입국이자 4위 가스 도입국이다.
한국은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3위 수입국이다. 작년 한 해만 한국은 360억 달러(약 50조 원)어치 LNG를 수입했다. 이 같은 에너지 구매력이 트럼프 2기 행정부와 관계 관리를 하는 데 지렛대 역할을 해 미국의 대한국 통상 압력 완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먼저 공기업인 가스공사가 현재 가스 도입선을 다변화할 여지가 있어, 가스공사가 미국산 가스 구매를 확대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가스공사는 1990년대부터 이어온 카타르, 오만과 연간 총 연간 898만 톤 규모의 장기 계약을 올해 말로 종료한다. 내년부터 이를 대체하는 장기 계약 물량은 358만 톤. 기존 장기 계약 대비 연간 540만 톤 물량이 감소한다.
가스공사는 감소한 장기 계약분 중 연간 400여만 톤은 3∼15년 기간의 단기·주기 계약으로 채우는 등 도입의 유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준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가스 도입선 선택을 위한 일정한 여지가 있는 가스공사가 2028년 이후 도입하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추가 장기계약 입찰에서 미국산 가스 도입을 결정할 것인지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가스공사는 이르면 내년 초 낙찰 업체를 선정할 예정이다. 내년 1월 트럼프 신정부 출범을 전후로 미국산 가스 계약 발표가 나온다면 이는 한국의 대미 에너지 수입 확대를 공식화하는 이벤트로 여겨질 수 있다.
이와 함께 가스보다는 수입 확대 여력이 작은 편이지만 도입선 다변화 차원에서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를 지원하는 방안도 정부의 검토 대상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동에 치우친 원유 도입선 다변화 촉진 차원에서 중동산 도입 대비 더 들어가는 운송비, 비축 비용 등을 보전해 민간 업체들의 미국산 원유 수입을 촉진·유도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정부 안팎에서는 한국이 선제적 무역 수지 관리 메시지를 발신함으로써 트럼프 신정부의 '무역전쟁 표적'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상대국을 압박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해졌는데 한국이 타깃이 될까 우려된다"며 "에너지, 농산물 등 수입선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알려 미국 내 우군을 확보함으로써 통상 압력을 완화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