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발생 세계 1위 한국…“4기가 말기인 시대는 지났다”

입력 2024-11-01 06:00수정 2024-11-0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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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수술로 4기 완치 가능”…이근욱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인터뷰]

▲이근욱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분당서울대병원 암센터 내 연구실에서 국내 대장암 환자 발생 추이와 치료 환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투데이)

“증상이 나타나면 ‘이미 늦었다’라고 봤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근욱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국내 대장암 치료 실적을 묻자 ‘글로벌 톱(TOP) 대열’에 들었다고 답했다.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대장암 발생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이며, 지금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검진 접근성이 높고, 의료진의 수술 기술 및 항암치료 역량도 빠르게 발전해 현재는 4기 환자도 건강을 되찾을 정도로 선진적인 수준이다.

대장암은 치료가 까다롭고, 신약개발도 더딘 암종으로 악명이 높다. 본지는 최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이 교수를 만나 국내 대장암 환자 추이와 최근의 치료법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5060 세대에 젊은 환자까지…높은 치료성적, 검진·술기·치료제 관건

대장암은 전 세계적으로 세 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종이다. 국내에서도 갑상선암과 위암에 이어 유병률 3위로 집계된다. 최근에는 환자의 연령대가 50세 미만으로 낮아지는 추세도 보인다. 2022년 국제학술지 란셋(Lancet)에는 한국의 50세 미만 대장암 환자 비율이 10만 명당 12.9명에 달해 조사 대상 42개국 가운데 1위라는 연구 결과가 게재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암의 명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며, 젊은 환자의 증가세에도 여전히 50~60대 환자가 절대다수라고 설명했다. 그는 “암은 일부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례 외에는 원인을 밝히기 어려우며, 환자가 생활을 잘못해서 발병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식사나 라이프 스타일의 서구화가 젊은 환자 증가세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고 해도 여성은 60대부터, 남성은 40~50대에서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한다”고 부연했다.

국내 대장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74%로, 간암이나 폐암, 췌장암과 비교하면 비교적 높다. 초기에 눈에 띄는 증상이 없고, 다른 장기로 전이되기 쉬운 특성을 고려하면 치료 성적이 우수하다는 것이 국내외 학계의 평가다. 검진, 술기, 치료제 접근성 등이 성과의 비결로 꼽힌다.

이 교수는 “한국은 검진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어서 대장 내시경을 주기적으로 쉽게 받기 때문에 조기진단과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라며 “국내 의료진들이 복강경과 같은 수술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고, 술기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어 “우수한 치료제에 대한 환자 접근성이 좋은 편이라 대장암 치료 성적에 기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치료 실적은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4기에 처음 진단을 받는 환자가 적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전체 대장암 환자의 약 13.9%가 4기 또는 전이성 대장암 환자다. 이는 이미 암세포가 혈관을 통해 간, 폐, 뼈, 부신 및 뇌에 퍼진 상태라는 의미다. 바로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이가 진행된 환자들은 항암제를 활용해 종양을 축소해야 한다. 절제수술 이후에도 항암치료를 진행하며 예후를 지켜본다. 대장암 치료에 효과적인 항암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 교수는 “전이가 있으면 수술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지고, 수술의 범위를 벗어나면 치료의 목적이 완치보다는 생명 연장 또는 고통 완화가 될 수밖에 없다”라며 “4기 환자 중에서도 극히 일부 부위에만 전이가 있어 절제 수술이 가능한 경우가 간혹 있으며, 4기 환자가 절제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으면 완치율은 약 40~50%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이근욱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2기나 3기에서 진행한 보조항암치료는 치료 진행 여부에 따라 완치율이 20~30% 정도 차이가 나며, 특히 3기에서 그 차이가 더 뚜렷하다”며 “막연한 두려움으로 항암치료를 피하지 말고, 완치를 위해 담당 의사와 충분히 상의해 필요한 치료를 반드시 받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투데이)

신약 낭보 없는 20년…얼비툭스·국소치료로 4기 대장암도 극복 가능

아쉽게도 대장암 분야에서는 획기적인 신약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대장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변이는 약물로 타깃하기 까다로운 유형이 대부분이라서 신약 개발이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05년 국내 도입된 표적항암제 ‘얼비툭스’(성분명 세툭시맙)가 20년 가까이 전이성 대장암 1차 치료 표준 옵션으로 쓰이고 있다. 항체-약물접합체(ADC)나 분해제-항체접합체(DAC) 등의 신약이 연이어 등장하는 폐암, 유방암 분야와는 대조적인 실정이다.

이 교수는 “얼비툭스는 상피세포 증식인자 수용체(EGFR) 돌연변이를 표적하는데, 대장암을 비롯한 소화기암은 모두 상피세포와 관련이 있어 상피세포 증식인자를 조절하는 치료에 어느 정도 의존하게 된다”라며 “얼비툭스나 아바스틴(베바주시맙) 등의 표적 치료제가 옵션으로 고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유전자 검사에서 ‘RAS’라는 유전자 변이가 없는 좌측 대장암 환자에게는 얼비툭스 병용요법이 아바스틴 병용요법 대비 생존기간이 6~8개월 긴 것으로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신약 개발 낭보 없는 20년간 얼비툭스가 임상 현장을 지키며 대장암과의 싸움에서 선방했다. 얼비툭스의 글로벌 3상 연구 ‘FIRE-3’에서 얼비툭스 병용군의 전체생존기간(OS) 중간값은 38.3개월로 나타났다. 얼비툭스의 리얼월드 데이터 ‘OPTIM1SE’에서 얼비툭스 병용군 한국인 환자 196명의 OS 중간값 역시 35.1개월로 나타났다. 임상시험에서 확인한 약물의 효과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전이성 대장암의 국소치료 효과가 좋아졌다”라며 “국소치료는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인데, 얼비툭스와 같은 효과적인 항암제를 병용하면 전이가 있더라도 누구나 대장암 완치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10년 전쯤 간에 20개의 종양이 전이된 중년의 대장암 환자를 진료했는데, 이 환자는 얼비툭스 병용요법과 수술을 거쳐 완치 판정을 받고 현재는 건강한 모습으로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만 받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4기 암이 ‘말기 암’인 시대는 이제 지났다는 것이 이 교수의 평가다. 대장암을 진단받아도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그는 환자들을 향해 “30년 전 치료제가 거의 없던 시절에는 4기 진단을 받으면 6개월도 살기 힘들다고 말씀드려야 했지만, 지금은 항암치료만 잘 받아도 생존기간이 30개월 정도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2~3기 환자들을 향해서는 적극적인 보조항암치료를 당부했다. 대장암을 진단받아도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말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수술 후 일부 환자들이 막연한 두려움으로 보조항암치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있어서다.

이 교수는 “2기나 3기에서 진행한 보조항암치료는 치료 진행 여부에 따라 완치율이 20~30% 정도 차이가 나며, 특히 3기에서 그 차이가 더 뚜렷하다”라며 “막연한 두려움으로 항암치료를 피하지 말고, 완치를 위해 담당 의사와 충분히 상의해 필요한 치료를 반드시 받기를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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