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다람쥐 쳇바퀴’ 도는 대한민국

입력 2024-10-07 06:00수정 2024-10-0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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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경 사회경제부 차장

▲ 박일경 사회경제부 차장
7일부터 2024년도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야당은 10월 국감이 지나면 더 강력한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여야 정쟁으로 정책 질의는 뒷전으로 밀려난 국정감사가 될 공산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거부권을 행사한 ‘김건희 특검법’은 4일 국회 본회의 재의결에서 최종 부결됐다. 제21대 국회를 포함하면 두 번째다. 해병대원 특검법은 세 차례나 폐기됐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걸음,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거나 발전하지 못할 경우 쓰는 속담이다. 서로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지만 아무 소득이 없는 우리 정치권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의대증원’을 ‘의료개혁’으로 착각한 오류

“언제·어디서든 VIP 병동 진료를 볼 수 있는 권력자들이 의료정책을 결정한다는 사실에 화가 납니다.”

서울 소재 대형 종합병원 전공의가 ‘집단 휴직 사태’와 관련한 경찰 조사를 받으러 최근 출석하면서 한 말이다.

이 발언을 두고 의사들도 힘 있는 기득권이면서 누가 누구를 비판하느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 결국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선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다.

하지만 숨어있는 진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의·과학 정책방향을 ‘왜 이과(理科)의 이(理)자도 모르는 고시 출신 문과들이 주도하느냐’는 켜켜이 쌓인 이공계 불만이 깔려있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하는 데 기획재정부 세제개편 관료와 용산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판단이 주효했다. 그 의사결정 과정에서 과학계 입장은 외면됐다.

이공계 조언을 충분히 구했더라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졸업식에서 대통령 경호원들로부터 입이 틀어 막힌 채 끌려 나가는 과학자 모습은 안 봐도 됐을 일이다.

의료개혁 또한 마찬가지다. 진료현장에 몸 담은 의사들 건의가 반영되지 않은 개혁안에 전문성과 현장감이 투영돼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의대 증원’은 대한민국 의료 선진화를 궁극의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의료 선진화라는 당초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인가.

의대 증원은 최종적으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담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 같은 확신에 책임질 정책당국자가 있는지 묻고 싶다.

모두가 의대를 다시 들어가겠다고 난리다. 대학 입시 커트라인 최상위 학과를 대학 이름만 바꿔가며 의대가 죄다 점령한지 오래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산업은 누가 키우나

전부 의대만 가려 하면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산업 현장은 도대체 누가 남아 지킬 건가.

애플과 글로벌 시장을 두고 초격차 싸움 중인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누가 만들 것인지 궁금하다. 애플과의 스마트폰 경쟁에서 밀리면 앞으로 중국 사오미 제품을 사서 쓰면 되나.

한국이 중국에 앞선 기술은 이제 반도체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자조 섞인 전문가들 한숨이 크다. 반도체 역시 첨단기술이라 우수한 공대생들이 많이 필요하다.

주요 의·과학 정책을 결정할 땐 이과생 얘기를 경청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과생은 잘 모르는 분야 아니던가. 국정 운영에 있어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자신감은 좋다. 그러나 자신감이 과하면 자만(自慢)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답답한 현실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국민은 불안하다. 해묵은 혈연·지연·학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대한민국은 빈부 갈등, 세대 갈등, 계층 갈등에 시름하고 있다. 여기에 ‘문(文)-리(理) 갈등’까지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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