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인생 끝판…영국 1호 소프트웨어 억만장자 ‘마이크 린치’

입력 2024-08-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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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청소부→‘영국의 빌 게이츠’→‘실리콘밸리 최대 사기꾼’→‘딸과 함께 비극 사망 희생자’

▲영국 기업가 마이크 린치. 로이터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불의의 사고로 별세한 마이크 린치(59)보다 더 기구한 인생은 찾기 힘들 듯하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사업에 성공해 ‘영국의 빌 게이츠’로 꼽혔다. 이어 HP에 회사를 매각해 억만장자로 등극한다. 하지만 1년 만에 ‘실리콘밸리 최악의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사기 혐의로 소송까지 당했고, 10여 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기쁨은 찰나였다. 이를 기념해 가족ㆍ친지들을 초대한 요트 여행은 이례적인 돌풍에 휘말려 죽음의 항해가 됐다.

병원 청소부로 일하며 살림 보태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린치는 1965년 6월 16일에 런던 외곽 첼름스퍼드에서 태어났다. 소방관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는 모두 아일랜드 노동자 계급 출신이다. 린치는 휴일에는 어머니의 병원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생계를 보탰다.

우수한 성적을 거둬 11세 때 장학금을 받고 런던의 사립학교인 뱅크로프트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물리학, 수학, 생화학 등 자연과학을 전공했다. 신호 처리 및 통신 연구로 같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인공지능(AI)의 초기 형태인 ‘적응 패턴 인식’에 몰두한 것은 후에 오토노미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10년여간 키운 오토노미로 매각으로 돈방석

1996년에는 비정형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오토노미를 공동 창업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기업이 이메일ㆍ문서ㆍ오디오 파일ㆍ소셜미디어 게시물 등 대량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검색ㆍ관리하고 중요한 시사점을 도출한다. 오늘날의 머신러닝·AI 기술 발전에도 기여할 정도로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오토노미는 약 10년간 가파르게 성장해 린치는 영국에서 사상 첫 소프트웨어 기업 억만장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최첨단 학술 연구를 수십억 파운드 규모의 기술 사업으로 전환함에 따라 영국의 빌 게이츠ㆍ스티브 잡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6년에는 영국 기업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최고 영예 중 하나인 대영제국훈장(OBE)을 받았다. 2008년과 2014년에는 각각 왕립공학아카데미와 왕립학회의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2011년에는 당시 총리였던 데이비드 캐머런의 과학 고문으로 임명돼 AI 개발의 위험과 가능성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 같은 해 오토노미를 미국 휴렛팩커드(HP)에 110억 달러(약 14조7000억 원)에 매각해 돈방석에 앉았다. 린치는 개인적으로는 5억 파운드(8700억 원)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1년 만에 해고ㆍ사기 혐의로 소송당해

그러나 HP는 인수 1년 만인 2012년 오토노미의 기업 가치가 부풀려졌다며 88억 달러의 감가상각을 발표하고 린치를 회계부정 혐의로 고소했다.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악의 인수합병 사례’로 이름을 올렸다. 이와 함께 린치를 포함해 수천 명의 근로자가 HP에서 해고했다.

린치는 HP 소송에 맞서 무죄를 주장했다. 오토노미를 키운 기간 만큼아너 소송전은 계속됐고 2018년 미국 연방 검찰이 기소하기에 이른다. 린치는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다.

10여 년간의 소송 전 끝에 무죄

그 과정에서 수갑이 채워진 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송환돼 가택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다가 6월에 무죄 평결을 받고 풀려났다. 린치가 대부분 회계 문제를 위임했고, 발명하는 데 몰입하는 ‘스타트업맨’ 혹은 ‘거시적 기술 전략가’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린치의 대변인은 “재판에서 제시된 증거는 린치가 결백하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줬다”면서 “HP의 무능함을 린치에 뒤집어씌우기 위한 13년간의 끊임없는 노력이 마무리됐다. 다행히도 마침내 진실이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린치는 무죄 판결 직후 “오늘 판결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영국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과 제 분야의 혁신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19일(현지시간) 영국 유명 사업가 마이크 린치 등이 탄 호화 요트가 침몰한 후 다이버들이 수색 작업을 위해 바다에 뛰어들고 있다. 시칠리아(이탈리아)/로이터연합뉴스

미스터리 물보라에 딸ㆍ지인들과 비극 맞아

린치는 약 두 달 후 무죄 판결을 기념해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앞바다에서 가족과 회사 동료들을 초청해 자신의 호화 요트인 베이지안에서 선상 파티를 열었다. 하지만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나누고자 해 추진했던 여행은 죽음의 항해로 돌변했다.

22명(승객 12명ㆍ승무원 10명)이 탑승한 56m 길이의 요트에 19일 오전 5시께 기상 이변에 따른 갑작스러운 돌풍에 몰아친 것이다. 정박해 있던 요트의 돛대가 순식간에 부러졌고 이로 인해 배 전체가 50m 깊이 바닷속에 단 몇 분 만에 가라앉았다. 15명은 구조됐지만 린치와 그의 18세 딸을 포함해 7명은 사망했다. 린치의 싸늘한 주검은 21일 침몰한 요트에서 발견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영국의 해양수색 및 구조위원회의 매슈 샹크 회장은 “베이지안호는 이상 기후로 인해 희생됐다“면서 “물보라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이례적인 블랙스완 현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6월 린치와 함께 무죄 평결을 받은 스티븐 체임벌린 전 오토노미 재무 임원도 영국 집 근처에서 17일 조깅 중 차에 치여 사망했다.

린치 가족 대변인인 패트릭 제이콥은 성명을 통해 “복잡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마이크의 능력은 경이적이었으며, 이를 단순화하고 설명하는 능력도 뛰어났다”면서 “친구로서 마이크는 결코 지루하지 않았고,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지성과 유쾌한 활기로 활기찬 토론을 벌일 준비가 돼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그는 도전적이고 직설적일 수 있었지만, 그를 만나고 나면 제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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