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원정진료 코인으로 받아 세금회피…진화한 역외탈세 '백태'

입력 2024-07-02 12:00수정 2024-07-0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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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지능적인 수법으로 국부 유출한 역외탈세 혐의자 41명 세무조사 착수
국적 바꾸는 신분 세탁에 해외 원정진료 엔데믹 호황이익 탈세도

▲정재수 국세청 조사국장이 2일 정부세종청사 국세청 본청에서 '역외탈세 혐의자 세무조사 착수'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노승길 기자)

해외 원정진료 대가를 코인으로 받아 탈세를 꾀한 의사와 국내에서 키운 알짜자산을 국외로 무상 이전한 다국적기업, 국적과 이름을 바꾸며 세금을 탈루한 국내 거주자 등 역외거래를 이용해 국부를 유출한 탈세자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된다.

국세청은 2일 정부세종청사 본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지능적인 수법으로 국부를 유출한 역외탈세 혐의자 41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매년 역외탈세 혐의자를 대상으로 전국 동시조사를 실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최근 세법 전문가의 조력 및 가상자산 등 첨단기술의 등장으로 역외탈세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고도화되고 있다.

특히 중동정세 불안, 주요국의 고금리 기조 등으로 대외 경제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외국인으로 둔갑해 국외 재산을 숨기거나 가상자산을 이용, 해외 용역대가 등을 빼돌린 역외탈세 혐의자도 적발됐다.

정재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역외탈세 혐의자들은 사회적 책임과 납세의무는 외면한 채 경제위기 극복에 사용돼야 할 재원을 반사회적 역외탈세를 통해 국외로 유출, 성실납세로 국가 경제와 재정을 지탱해 온 영세납세자·소상공인에게 박탈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적세탁・가상자산 등 신종 탈세 수법을 통해 해외수익을 은닉한 업체를 비롯해 해외 원정진료 소득 탈루, 국내 핵심자산 무상 이전 등 역외탈세 혐의자 총 41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착수한다"고 밝혔다.

세무조사 대상자를 유형별로 보면 △국적을 바꾸거나 법인 명의를 위장한 신분세탁 탈세자 11명 △용역대가로 가상자산을 받으며 수익을 은닉한 코인개발업체 9명 △해외 원정진료・현지법인을 이용한 엔데믹 호황이익 탈세 13명 △국내에서 키운 알짜자산을 국외로 무상 이전한 다국적기업 8명 등이다.

▲역외탈세 사례 (자료제공=국세청)

사례별로 보면 국내 거주자 갑(甲)은 해외에서 미신고 사업으로 얻은 소득을 신고 누락한 후 해당 자금을 해외 비밀계좌에 은닉했다. 甲은 해외 이주 의사 없이 국내에 계속 거주할 예정임에도 황금비자로 외국 국적을 사실상 매입하며 국적을 변경했다. 잠시 외국에 머무른 후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입국하면서 은닉자금 일부를 투자 명목으로 국내 반입했다. 甲은 주민등록번호와 한국 여권을 버리고 이름을 바꾼 외국 여권으로 입국하며 추적을 회피했다. 특히, 甲은 해외 은닉자금을 국내・외 외국인끼리의 이전거래인양 동거인인 외국인 을(乙)의 국내 계좌에 송금하고 호화 저택을 구입하기도 했다.

국세청은 신고 누락한 甲의 해외 탈루소득에 대해 소득세를 과세하고 자금 일부를 받은 동거인 乙에게는 증여세를 부과하며, 해외 은닉 자금을 추적해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 미이행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역외탈세 사례 (자료제공=국세청)

이와 함께 소프트웨어 개발업을 영위하는 내국법인 A는 가상자산 발행사 등 해외 고객사에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관련 대금을 법정통화가 아닌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으로 받으면서 자신이 아닌 해외 페이퍼컴퍼니 B 명의로 수취 소득을 신고하지 않았다. 또한 A는 B를 통해 가상자산을 매각해 거액의 매각 차익이 발생했음에도 관련 수익을 미신고했다. 특히, 가상자산 매각 차익 중 일부는 가공비용 계상 등의 방법으로 사주 명의로 개설된 조세회피처 펀드 계좌에 유출한 정황도 드러났다.

국세청은 해외용역 대가 및 가상자산 매각 차익 미신고액에 대해 법인세를 매기고, 역외펀드 유출 자금에 대해서도 사주에게 소득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역외탈세 사례 (자료제공=국세청)

국내에서 성형외과를 영위하는 C는 동남아 소재 현지 병원에서 원정진료를 벌이며 받은 대가를 가상자산으로 받았다. C는 과세당국의 추적을 피하고자 가상자산을 국내 거래소에서 매각하고, 외국인 D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ATM을 통해 수백 회 현금 인출 후 다른 ATM을 통해 본인 명의 계좌로 다시 수백 회에 걸쳐 현금 입금하는 방식으로 자금세탁을 했다.

▲역외탈세 사례 (자료제공=국세청)

수출대금을 미신고 현지법인 계좌로 빼돌리는 등 법인 자금을 유출해 사주의 도박자금 및 자녀의 해외 체류비에 유용한 사례도 들통났다.

제조업을 영위하는 내국법인 E는 해외 거래처로부터 받을 수출대금을 사주 개인의 미신고 현지법인에 빼돌리는 방식으로 법인 자금을 유출하고 사주의 원정도박 자금, 자녀의 해외 체류비로 유용했다. E는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외주업체로부터 매입가액이 부풀려진 세금계산서를 수취하고, 실제 금액과의 차액을 돌려받아 사주 병(丙)의 도박자금으로 유출했다. E는 사주 丙과 같이 카지노에 출입하는 외국인 도박파트너 정(丁)의 유령 사업체에 가공으로 매입 거래를 하며 자금 유출했다.

국세청은 신고 누락한 해외 매출 대금 등에 대해 매출 누락으로 과세하고, 사주 丙의 도박자금 등으로 쓰인 금액에 대해 소득세를 과세할 방침이다.

▲역외탈세 사례 (자료제공=국세청)

안정적 수익이 창출되는 견실한 국내 사업부를 임직원 집단해고 등을 거쳐 국외특수관계사로 통째로 넘긴 정황도 포착됐다.

다국적기업의 국내 제조법인인 F는 해외 거래처 G 등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었으나, 그룹 사업구조 재편으로 E 법인이 보유하던 판매 기능을 국외관계사 H에 무상 이전했다.

판매 기능과 함께 고객 계약이 모두 이전된 결과, F는 매출이 65% 이상 급감한 대신, H는 매출이 급등하는 등 대가 없이 높은 이익을 누렸다.

특히, 사업 기능 이전 과정에서 국내 임직원이 집단 해고됨에 따라 명예퇴직금 등 고액의 비용이 발생했으나, 일부 금액만 해외 모 법인으로부터 보전받아 국내 법인세를 과소 신고했다.

국세청은 국내 자회사 F가 무상 이전한 고객 계약 등의 양도 대가와 집단해고 비용 등에 대한 과소 청구분에 대해 법인세를 과세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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