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모두 골라야 하는 문제

입력 2024-06-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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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기자)

학생 시절 중간고사 및 기말고사를 치를 때면 늘 하던 일이 있다. 문제 속 ‘모두 고르시오’ 표현에 동그라미를 치는 것이다. 미리 강조 표시를 해두지 않으면 시험 도중 이를 놓치기 일쑤였다. 정답이 2개 이상인데도 한 개만 달랑 골라 문제를 틀리는 불상사를 방지하려면, 두 개 이상의 답을 모두 골라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상기시켜야 했다.

이 같은 학창 시절 습관이 생각난 것은 최근 본지에서 진행한 저출생 해법모색 세미나에서였다. 세미나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은 저마다 유능한 직원의 이탈을 막고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사내 정책을 시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저출생 문제 타개를 위해서는 일과 생활을 모두 챙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합계출산율은 0.76명을 기록했다. 이는 1분기 기준 통계청이 인구동향을 집계한 이래 역대 최저다. 특히 3월 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7.3%(1549명) 줄어 1만9669명을 기록, 처음으로 2만 명 아래로 내려갔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노동 아니면 결혼 및 출산 중 하나만 골라야 하는 상황 때문에 저출생 문제가 심화했다고 지적한다. 두 가지를 병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젊은 여성들이 노동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경제적 가치가 낮은 출산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삼식 인구보건복지협회장은 “개인이 시간 가치 증대를 위해 자녀 양육보다 시간이 덜 소요되는 상품을 선호한다는 ‘출산력 모형’과 자녀가 경제적 장점이 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출산을 포기한다는 ‘부유동출산력이론’이 우리나라에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일·생활 균형'을 가능케 하는 제도들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시차출퇴근, 근무시간 선택제 등 유연근무제가 대기업, 공공기관뿐 아니라 중소기업을 포함해 사회 전반에 도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한국의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사실을 듣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다’며 개탄했던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의 일·생활 불균형을 다시금 꼬집었다.

“출산과 양육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극단적으로 긴 근무 시간이 당연한 직장 문화에서 일하지 않았어요. 한국은 아직도 저출산을 유발하는 이런 이상한 이유를 유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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