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의대 2000명 증원, 과학적 근거 부족…자료 검증하며 경악”

입력 2024-05-13 15:56수정 2024-05-1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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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전의교협 회장 “국가의 중요한 대계는 주술의 영역 아냐”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대한의학회가 13일 ‘의대 입학 정원 증원의 근거 및 과정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노상우 기자 nswreal@)

의료계는 정부가 의대 증원 정책의 근거로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의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대한의학회는 13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의대 입학 정원 증원의 근거 및 과정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은 “정부가 어떠한 근거로 2000명이라는 특정 숫자를 결정했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기습적으로 발표했는지 궁금했다”면서 “(정부가 법원에 제출한) 자료를 검증하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수없이 많은 회의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2000명 증원에 대한 근거는 없다”고 피력했다.

이어 “2월 6일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다며 시급히 진행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 유일하게 언급됐다. 2000명은 어디서 나온 객관적인 숫자냐”라고 반문했다.

특히 김 회장은 “국가의 중요한 대계는 주술의 영역이 아니다. 과학적 근거와 치열한 논쟁, 토의를 거쳐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며 “누군가가 한 결정의 근거를 만들기 위해 자료를 취사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의료계가 통일된 의견을 내놓지 않아 대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정부 의견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 회장은 “의료계에서는 지금까지 통일된 목소리로 원점 재논의를 이야기했다. 정부가 제출한 자료를 확인하면서 ‘원점’도 없었고, ‘논의’조차 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해외 사례와 같이 모든 논의 과정과 결과를 국민께 투명하게 공개해 국가보건의료의 틀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의교협과 대한의학회 측은 정부가 (법원에) 제출한 자료를 검토한 결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들은 정부가 앞서 발표했던 3대 보고서의 경우 보건복지부의 의뢰를 받고 진행한 만큼 이해충돌가능성이 있고, 보고서 저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증원 근거로 무리하게 인용됐다고 설명했다.

실습교육과 전문과 순환 교육 등이 필요한 만큼 과도한 증원은 교육 여건상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부족한 교수 인력이 갑자기 늘어날 경우 의학교육의 질이 현저히 저하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급작스런 증원은 의학교육평가원의 평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폐과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증원 결정 과정에서도 보건의료발전계획 수립 등이 사전에 이뤄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절차적 위법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의대 인증 평가 결과를 위해 한 곳을 조사할 경우에도 4일 이상 걸리지만, 이번 증원을 위한 의학교육점검반의 현장실사는 하루 또는 반일에 걸쳐 마무리됐다.

전의교협 측은 “의학교육점검반이 의학교육 인증평가를 할 자격 조건을 갖춘 구성원인지도 불명확하고, 대부분 서면 검토와 비대면 간담회를 진행했다. 40개 대학 중 14개 대학만 현장점검에 나섰다. 정부 측에 유리하고 긍정적인 내용만 부각하고 부실한 결과는 무시한 채 진행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결정의 근거로 법원에 제출한 보정심 회의록과 각종 자료를 이날 공개한 의료계 소송대리인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는 “2000명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외부’에서 누군가가 결정한 숫자”라며 “이를 보건복지부 장관이 일방 통보하고 요식 절차만 거친 뒤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 이후 진행되는 모든 소송자료도 즉시 국민께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정부가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본인들이 스스로 공개했어야 한다. 정부가 제출한 자료 중 한두 개를 빼면 다 언론에 알려진 사실상 증거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지금도 공개하지 않고 숨기는 게 많다”면서 소송을 방해하는 건 정부라고 꼬집었다.

또 그는 “재판장이 제출하라고 요구한 자료를 거의 제출하지 않았다. 정부가 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소송방해라고 얘기하기 전에 국민의 알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의료계가 의대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멈춰 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은 17일 이내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의대생과 전공의, 의대 교수 등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집행정지 신청을 낸 바 있다.

항고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에 따라 정부의 의대 증원 향방은 달라진다. 이달 말까지 대학들은 올해 대학별 입시전형 시행계획을 확정해야 해서다. 의료계에선 이론상 재항고 절차를 거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3달 이상 걸리는 만큼 이번 판단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 또는 기각하면 내년도 의대 증원 계획은 확정 절차를 밟게 된다. 반면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다면 정부의 내년도 의대 증원은 사실상 어려워질 것이란 의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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