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국토부 '통계 오류'보다 심각한 인식 오류

입력 2024-05-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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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연간 주택 통계를 정정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주택 인허가·착공·준공을 합쳐 19만여 가구가 통계에서 누락됐고 이를 바로 잡았다. 인허가는 3만9853가구, 착공은 3만2837가구, 준공은 11만9640가구를 통계에서 빼먹었다.

전체로 보면 서울시에서 세 번째로 주택 수가 많은 노원구(19만2022가구)가 사라졌던 셈이다. 준공만 따져도 서울에서 중랑구(11만8357가구), 영등포구(11만2068가구), 도봉구(10만9190가구), 서대문구(10만5047가구) 가운데 하나 이상이 빠져야 할 수치다. 1기 신도시인 분당과 일산이 없는 것과 비교되기도 한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누군가 작정하지 않고는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해도 무리가 아니다.

엄청나다는 말로 다 표현되지 않을 정도로 큰 사건인 만큼 국토부의 통계 정정 발표에 꽤나 놀랐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와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통계 정정보다 더 놀라운 것은 국토부의 태도다. 국토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개편으로 인한 주택공급량 과소발표 정정'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한 장짜리로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2021년 6월 개정된 전자정부법에 따라 시스템 인터페이스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고 1월 말 이를 인지해 수정했다'라고 한 줄로 요약된다.

관련 브리핑을 진행했지만,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주택 수요자와 공급자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지표를 잘못 발표했다는 중대한 사실을 알리고 설명하는 임무를 수행한 것은 차관도 아니다. 주택토지실 소속 주택정책관이다. 그나마도 그 모습이 대중에 공개되지 않는 백 브리핑 형식을 택했다.

아울러 자료나 브리핑 내용 어디에도 국토부의 사과와 반성은 없다. 오히려 시스템 오류를 국토부가 빠르게 대응했다는 인상을 주려는 노력만 느껴진다. '자체 전수 점검 즉시 착수', '즉시 시정조치' 등을 강조한 부분을 보면 그렇다.

문제를 발견하고 발표하는 데까지 석 달이나 걸린 경우를 두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할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통계 오류가 별문제 아니라고 했다. 그는 "공급 실적이 과소 집계됐더라도 경향성은 기존과 변화가 없다. 인허가는 통계 정정 전 전년보다 26% 줄지만, 정정 후에는 18% 줄어든다. 이는 정책 방향성을 바꿀 정도의 큰 차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이면 굳이 구체적인 통계 수치를 내놓을 필요 없이 '증가' 또는 '감소'란 두 글자씩만 발표하면 될 일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백번 양보해서 정책의 방향을 바꿀 만큼은 아니라고 치자.

그렇다면 잘못된 수치를 근거로 언론, 온라인 채널을 통해 부동산 시장 전망과 대응 전략을 제시한 전문가들, 이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집을 사고판 사람들, 사업 계획을 잡은 건설업자들에 관해서는 국토부가 언급할 가치가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재산상 피해를 떠나 혼란을 초래하고 수많은 부동산 전문가들을 오보 생산자로 만든 것만으로도 고개를 여러 번 숙이는 게 맞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국토부의 통계가 잘못된 진단의 근원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토부 책임자인 박 장관이 나와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그래야 국토부 통계를 향한 불안과 불신이 보다 빨리 사라질 수 있다. 지금처럼 얼렁뚱땅 넘어가려 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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