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암, 착한 암 아냐…환자들 자책 말아야”…‘신장암’ 인식개선 시급

입력 2024-04-15 06:00수정 2024-05-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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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발병 10위 진입…박인근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인터뷰]

▲14일 인천에서 개최된 국제신장암연합(IKCC) 국제컨퍼런스에서 만난 박인근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국내 신장암 치료 환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신장암은 ‘착한 암’이 아니고, 누구나 운이 없으면 걸릴 수 있습니다.”

신장암의 예후와 원인에 대해 묻자 돌아온 박인근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단호한 답이다. 신장암은 갑상선암과 함께 이른바 ‘착한 암’으로 불리고 있지만, 이는 환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이 박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누구나 갑작스럽게 암을 진단받을 수 있다면서 환자들에게 “발병 원인에 집착하며 자책하고 죄책감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본지는 14일 인천에서 개최된 국제신장암연합(IKCC) 국제콘퍼런스에서 박 교수를 만나 국내 신장암 치료 환경 개선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신장은 체내 수분과 전해질을 조절하고 노폐물을 걸러주는 기관이다. 횡격막 아래, 척추의 양옆에 2개가 자리를 잡고 있다. 1개의 신장에는 약 200만 개의 ‘사구체’가 혈액을 여과해 깨끗한 상태로 유지해준다. 신세포암과 신우암 등이 포괄적으로 신장암으로 불리고 있지만, 종양내과에서 신장암은 특정한 조직 형태를 가진 신세포암(RCC)으로 좁게 정의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신장암으로 의료기관에 내원한 환자는 3만9165명에 달했다. 이는 2018년 수치인 3만563명 대비 28% 증가한 수준이다. 최근 20대와 여성 환자의 증가세가 두드러졌지만, 이는 통계 방식에 따른 영향으로 추정된다. 가령 림프종이 신장에 생긴 환자가 신장암 통계에 잡히기도 한다. 국내에서 갑작스럽게 특정 집단에서 신장암 환자가 증가할 만한 요인은 없다는 것이 학계의 분석이다.

박 교수는 “신장암은 2019년부터 국내 빈발하는 암 가운데 10위에 올랐다”라며 “1~2위를 다투는 대장암, 폐암, 갑상선암보다는 환자 수가 적지만, 증가세는 명확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신장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서는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하는데, 국가검진에 포함되거나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접근성은 낮다”라고 설명했다.

신장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완치율이 98%에 달할 정도로 예후가 좋다. 국내 임상시험과 신약 보급이 활발히 이뤄진 덕분이다. 하지만, 예후가 좋다고 해서 ‘착한 암’이라는 별명을 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박 교수의 지적이다.

박 교수는 “세상에 착한 암은 없다. 신장암 역시 전이가 되지 않거나, 느리게 자라는 암이 결코 아님에도 오해가 있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신장암 치료 성과가 지금처럼 우수해진 것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라며 “신약이 개발되면서 치료 옵션이 많아진 영향이 큰데, 치료제가 인터류킨(IL)뿐이었던 시절에는 진단 후 생존 기간이 1~2년에 불과했다”라고 설명했다.

신장암은 발병과 진단 모두 ‘우연히’ 이뤄진다는 것이 박 교수의 소감이다. 신장암의 원인으로 알려진 흡연, 비만, 식습관 등은 발병에 일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또한, 신장암은 말기에 이르기 전까지 특별한 증상이 없다. 이 때문에 건강검진 중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거나, 신장암이 아닌 다른 이유로 복부 초음파 검사를 했다가 우연히 진단받는 환자가 적지 않다.

박 교수는 “신장암의 원인을 명확히 하나로 정리할 수는 없다”라며 “예방을 위해 체중을 감량하거나 고기를 먹지 않는 등 생활 습관을 교정하려는 사람들이 흔한데, 암은 우연히 재수가 없으면 걸리는 것이지 환자 탓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신장암은 초기에 혈뇨와 같은 증상이 보이는 환자도 드물게 있지만, 대부분 증상이 없다가 말기에 가서야 혹이 만져지고 통증이 느껴지는 등 증상이 나타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자들은 우연히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이 박 교수의 우려다.

박 교수는 “환자들은 대부분 진단된 이후에 인터넷에서 신장암의 원인을 검색하고, 그간 자신의 생활 방식에 대해 반성하거나 자책하며 힘들어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령 어떤 환자는 비만이 신장암의 원인이라는 정보를 접하고 고기를 먹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항암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환자의 체력이기 때문에 고기를 꼭 섭취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병에 걸린 것의 책임이 환자에게 있다고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환자들의 정서적인 안정에 상당한 타격을 준다”라고 지적했다.

환자들이 느끼는 죄책감은 적극적인 검진을 가로막는다. 특히, 유전적 요인이 있는 환자들은 가족까지 선제적인 유전자 검사가 권장된다. 하지만 ‘유전병’이라는 편견이 주는 심리적 부담감이 커, 검사에 나서는 보호자들이 드물다.

박 교수는 “환자 가족들에게 유전자검사를 권하면 굉장히 꺼린다”라며 “검사 비용의 문제를 차치하고 유전성 질환에 대한 편견이 큰 걸림돌”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환자의 부모들은 자신이 자식에게 나쁜 유전자를 물려줬다는 죄의식을 느껴 현실을 회피하게 된다”라며 “검사를 받으면 정말로 이상을 발견하거나, 진단될까 봐 공포심을 느끼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박 교수는 암의 원인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현재까지 알려진 암의 원인은 사후에 집계한 통계를 분석한 것에 불과하다”라며 “질병에 걸린 것을 죄와 같이 취급하고 환자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환자들은 반성하고 후회하며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고, 앞으로의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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