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밥상 차리자 ‘자산 재평가’ 숟가락 얹는 기업 나온다

입력 2024-03-2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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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가 보유 중인 캐릭터 유후와 친구들.

‘기업 밸류업’ 테마에 불이 붙자 코스닥 상장사 오로라가 오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상장사 최초로 ‘자산 재평가’ 주주제안 안건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인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대로 저 PBR주들의 집중 매수가 이어지자 자산재평가를 통해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게 만드려는 눈속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7일 오로라는 오는 26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 안건에 제7호 의안으로 ‘자산 재평가의 건’을 부의했다. 자산재평가란 기업 자산의 현재가액이 장부가액과 차이가 날 때 기존 장부가를 수정해 새로운 시가를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유형자산의 가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부동산, 토지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일반적인 회계장부에는 이러한 유형자산이 역사적 원가로 기재돼 있어 공정가치로 재평가하면 부동산 가격 상승분만큼 자산가치가 늘어나게 된다.

이를 통해 PBR도 줄어들 수 있다. PBR은 시가총액을 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으로 순자산가치가 증가하면 외관상 PBR이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PBR이 1보다 낮을수록 현재 기업이 가진 순자산보다 시가총액(주가)이 낮다는 의미로 현재 시장에서 저평가를 받고 있다는 기대감이 확산해 ‘밸류업’ 테마에 편승하려는 투자 열기를 얻을 수 있다.

NH투자증권은 지난달 오로라가 자산재평가를 시행할 경우 높은 수준의 자산가치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강경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08년 취득한 484억 원 규모 강남 본사와 2021년 666억 원 신사옥의 장부가와 취득 시점을 고려했을 때 밸류에이션 재평가 효과를 볼 것”이라고 했다.

▲ KT는 영유아 전용 IPTV 서비스 지니 TV 키즈랜드에서 한글 깨치기 프로젝트로 ‘핑크퐁 한글 놀이터’를 공개한다. (사진제공=KT)

오로라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투자부동산의 장부가치는 1243억 원이다. 자산총계는 5229억 원, 시가총액은 770억 원으로 현재도 PBR이 0.5배인 자산가치 대비 주가가 저평가를 받는 상태다. 자체 캐릭터 '유후와 친구들' 외에도 '신비아파트', '핑크퐁', '푸바오', '펭수' 등 인기 캐릭터를 활용해 애니메이션 사업을 진행하는 캐릭터 디자인 전문 기업이다.

국내에서 자산재평가는 1998년 국제금융위기(IMF) 때 일시적으로 허용됐고, 이후 줄곧 금지됐었다. 부채가 실질적으로 줄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의 부채비율을 떨어뜨리는 착시라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일각에서는 '장부 마사지'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 2008년 금융감독원이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하기로 하면서 2009년부터 조기 시행됐다. 당시 기업들은 재무상태표 상에서 부채비율은 낮추고, 자산은 오르는 효과를 누리기 위해 너도나도 자산재평가에 뛰어들었다. 1981년 설립된 오로라의 마지막 자산재평가도 이때 시행됐다.

오로라는 2009년 2월 자산재평가를 실시해 약 290억 원의 감정평가차액을 얻었다. 이번 안건이 통과될 경우 15년 만에 시행되는 자산 재평가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오로라가 지난해 보유 중인 유형자산은 2022년보다 약 45% 증가한 2026억 원으로 나타났다.

캐릭터 완구 사업을 영위 중인 오로라는 사업 특성상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있어 생산시설은 미미한 편이다. 대신 건물, 토지 등 부동산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 자산 재평가가 시행될 경우 오로라가 기존에 갖고 있던 자산들이 현재의 시가로 감정평가하면서 회계상 자산규모는 급격하게 늘어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오로라의 올해 영업실적은 우상향이다. 오로라는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284억 원을 기록해 2022년(183억 원)보다 50% 넘게 증가했다. 이는 오로라 설립 이래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0.4% 증가, 19% 감소했지만,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해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 경쟁력이 저조한데도 PBR이 낮아 상대적 저평가로 보이려는 기업들을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해식 보험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자산재평가는 기업이 재무건전성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지만, 기업가치의 제고로까지 이어질 것인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코스피 상장사 최고재무관리자(CFO)는 "자산재평가는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회계장부에 적혀있는 유형자산의 금액을 다르게 바꿔 기록하는 것뿐"이라며 "회사가 영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도 마찬가지이며, 펀더멘탈도 그대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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