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본격화에 교수 줄사직…물 건너간 병원 정상화

입력 2024-03-20 16:01수정 2024-03-2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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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의대 교수협의회, 사직 결의 확산…전공의 복귀 감감무소식

(이투데이DB)

정부가 의대 증원 방침을 확정하면서 교수들의 사직 행렬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업무 복귀 기미를 보이지 않아 당분간 수련병원의 혼란은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2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 의대 교수들이 조직한 단체들이 한목소리로 사직 의사를 밝히고 있다. 현재 교수들은 20개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참여하는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와 40개 의대 중 교수협의회가 있는 33개 의대가 참여 중인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 등 2개 조직을 중심으로 집단 사직을 추진하고 있다.

비대위 소속 대학 교수들은 25일부터 일괄적·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비대위는 정부에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하지 말 것을 촉구하며 의사, 학계, 정부, 시민단체로 구성된 협의체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서울대와 연세대 등을 필두로 각 학교 교수회가 교수들의 의견을 조사해 사직 의향을 확인했다.

▲방재승 전국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18일 서울대학교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발 발표 말라’ 요청했지만…증원 계획 확정

정부가 이날 의대 증원 계획을 구체적으로 확정하면서 교수들의 사직 행렬에 불을 붙였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전공의, 교수들은 그간 정부에 의대 증원의 필요성과 그 규모 등을 과학적·합리적 근거에 기반을 둬 다시 논의하자고 요구했다. 정부가 의대 증원 계획을 확정할 경우, 대규모 사직은 물론이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와 휴학 중인 의대생들이 복귀할 길이 없어진다는 경고도 지속했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는 앞서 18일 서울대 교수들의 사직 결정을 밝히면서 “정부가 20일에 증원 배분 결과 발표를 강행할 경우, 이후에는 도저히 대화의 장이 열릴 수 없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파국은 분명히 정부의 잘못”이라면서도 “제발 정원을 확정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울산의대 교수협의회 역시 19일 호소문을 내고 “교수들은 직을 내려놓는 고육지책으로 정부에 이 사태를 해결할 대화와 타협의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라며 “20일 발표할 계획인 의대 정원 배정은 대화의 장부터 마련한 후로 미루고, 의사들이 환자들 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대통령께서 물꼬를 틔워달라”고 요구했다.

교수들의 요청이 관철되지 않아, 당분간 전국 수련병원의 진료는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확정했다. 2000명 중 82%(1639명)를 지방 의대에, 18%(361명)를 경인 지역 의대에 배정한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발표했다. 교수들의 사직과 전공의들의 이탈을 수습하기 위한 타협의 가능성이 사라진 셈이다.

▲서울 소재 의과대학 앞에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뉴시스)

‘빅5’ 모두 나간다…의대 교수회 사직 결의 우후죽순

서울 소재 주요 대학병원 ‘빅5’ 교수들은 모두 사직을 결정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18일 교수 총 380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회를 열고 사직서 일괄 제출을 안건으로 논의해 75%(283명)의 동의를 모았다. 이에 각 교수로부터 사직서를 취합해 25일에 일괄 제출하기로 합의했다.

연세대 의대 교수들도 같은 날 회의를 통해 일괄 사직을 결정했다. 연세대 산하 기관인 연세대 의대·세브란스병원·강남세브란스·용인세브란스 4개 기관 교수들 1336명이 참석한 총회를 진행한 끝에 교수 전원이 25일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성균관대 의대 교수들이 19일 회의 끝에 사직하기로 결의했다. 이 학교는 삼성서울병원을 전공의 수련병원으로 두고 있다. 회의에는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삼성창원병원 소속 교수 400명가량이 참석했으며, 3분의 2 이상이 찬성했다. 사직서 제출 시점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울산대와 가톨릭대 의대 교수들도 일제히 사직을 결정한 상태다. 울산대는 울산대·강릉아산병원을, 가톨릭대는 서울성모병원을 비롯해 8개 수련병원을 두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과대학 교수가 연구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개별 의사들 ‘사직의 변’ 호소 이어져

교수들은 정부의 강경한 태도를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문제점은 물론, 정책 추진 과정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

최세훈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부교수는 19일 SNS에 “정부의 무자비한 정책으로 전공의들 모두 미래에 절망한 채 자발적 사직을 결정했다”라며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흉부외과의 미래는 없다”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정부의 의료 개혁을 겨냥해 “불과 한 달 만에 이 땅의 의료가 회복 불능으로 망가져 버렸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라고 날을 세웠다.

의대 교수들은 비대위 차원의 사직 결의에 앞서 이달 초부터 SNS를 통해 개별적인 사직을 지속하고 있었다. 배대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SNS를 통해 “다른 길을 찾도록 하겠다”라며 “면허를 정지한다는 보건복지부 발표와 현 정원의 5.1배를 적어낸 모교 총장 의견을 듣자니 동료들이 다시 들어올 길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윤우성 경북대 이식혈관외과 교수도 SNS를 통해 “외과 교수직을 그만둔다”라며 “이미 오래전 번아웃이 됐고 더 힘만 빠진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전공의들의 복귀를 설득하는 정부의 태도를 겨냥해 “장밋빛 미래도 없지만 좋아서 들어온 외과 전공의들이 낙담하고 포기하고 있고, 우는 아이한테 뺨 때리는 격으로 정부는 협박만 하고 있다”는 지적을 덧붙였다.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로 의료 공백이 계속되는 가운데 11일 서울 영등포구 명지성모병원 응급실로 119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병원 밖에서 1개월째…전공의들 감감무소식

2월부터 대거 사직을 감행한 전공의들도 병원으로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그간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복귀를 설득하는 한편, 3개월 면허정지 처분 카드를 꺼내 들며 회유와 압박을 지속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철회와 전공의 업무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5일부터 미복귀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면허 정지 사전 통지서를 발송하고 있다. 이달 초 통지서를 받은 전공의들은 25일까지 의견을 제출해야 하며, 기한 내 의견을 제출하지 않으면 면허 정지에 대한 이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직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대거 면허정지가 현실화하면, 전공의들은 당분간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전날 SNS를 통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18일 기준 98개 병원 전공의 9929명 중 현재 병원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는 308명으로 3.1%로 확인된다”라며 “일주일 전인 11일 기준 근무 인원이 303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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