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어떤 ‘일본’을 보고 있나

입력 2024-03-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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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주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권성주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권성주]

2023년 대한민국 국민 약 700만 명이 일본을 찾았다. 한 명의 중복 방문도 모두 셈하는 방식이니 실제 우리 전체 인구 중 700만이 일본을 방문했다고 말할 순 없다 해도, 작년 한 해 가장 많은 해외여행객이 일본으로 몰린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일본을 찾는 줄은 출국장뿐이 아니었다.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이 잇달아 흥행기록을 세웠고, J-POP 가수들의 댄스를 따라 하는 챌린지가 공중파를 타고 유명 연예인들을 비롯해 대중으로 퍼졌다. 그리고 (주방장에게) 맡긴다는 일어 ‘오마카세’는 스시집, 이자카야의 메뉴를 넘어 ‘한우 오마카세’, ‘한식 오마카세’로 쓰임에 거부감이 없다.

한편, ‘독립운동은 못 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포스터가 온라인 공간으로 퍼졌던 기억이 불과 2~3년 전이고, 지난 삼일절 전야, 일본 여행기를 올린 한 인플루언서가 네티즌의 비난 봇물에 결국 장문의 사죄 글을 올린 것이 화제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에겐 두 ‘일본’이 있다.

일본도 그렇다.

2023년 일본 국민이 가장 많이 찾은 나라는 마찬가지로 한국이었고, ‘K‘가 붙는 음악, 드라마, 미용 등의 ‘한류’는 여전히 인기몰이 중이며, 동경 신주쿠의 한류 거리 신오쿠보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한편, 일본 내에 한국을 혐오하고 적대시하는 ‘혐한’의 목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한일 협력의 상징처럼 인식돼 있는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에서부터 싹을 틔웠고, 일본 열도를 휩쓸었던 여성 아이돌그룹 ‘카라’의 큰 인기몰이 등이 자극제가 되어 그에 반작용하듯 확대되면서 한류와 공존해왔다.

그렇게 일본에도 두 ‘한국’이 있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은 서로, 어느 한 면을 보고 당기기도, 그 반대 면을 보고 밀어내기도 한다. 그것도 동시에.

그런 양국 간에 최근 시선이 멈추는 수치가 하나 있다.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과 일본의 겐론NPO가 매해 공동으로 실시하는 양국의 상호인식 여론조사에서 작년에 일본의 대한(對韓) 호감도가 비호감도를 역전한 것이다. 2013년 해당 연례 조사가 시작된 지 10년 만에 처음 관찰된 이 역전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반일무죄’라는 말이 있다. 역사적 가해자인 일본을 향해 피해자인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 비판하고 반대해도 잘못이 아니란 뜻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류, 혐한의 20년을 돌아보면, 혐한과 반일은 서로의 자양분이 되는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다. 인종차별 반대를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한국을 좋아해 한국드라마를 즐겨보던 일본의 일반 국민으로 하여금 서점 가판대의 혐한 서적에 손이 가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일본 전체를 하나로 묶어 비판해온 우리의 ‘반일무죄’ 외교였다. 그리고 그 결과, 지난 10년 이상 한국에 대한 비호감도가 호감도를 앞서 왔고, 그 기반 위에 일본의 우익 정치세력 목소리는 힘을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에 그 지형이 바뀐 것이다.

내년(2025년)이면 한일국교 정상화 60주년이다. 혼돈의 국제정세 속에 서로의 협력이 중요시되는 때에 우리는 서로의 이중성을 냉철히 분리해서 봐야 한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피해자’로서의 도의적 우위를 내세우며 일본의 일부 정치세력과 일반 국민을 하나로 싸잡아 비판하고 적대시하면 혐한의 공간은 커지고 결국 우리가 바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자세는 더욱 멀어진다. 일본 정치 지도세력의 자세를 결정하는 건 결국 그들을 만드는 일본의 유권자, 즉 일본 국민뿐이다.

한일기본조약 60주년을 앞두고 찾아온 대한 호감도 우위의 일본을 보며,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우린 어떤 일본을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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