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기 많은 독재자 푸틴?…독재의 새 역사 썼다 [이슈크래커]

입력 2024-03-1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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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뉴시스)
현대판 ‘차르’(황제)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71) 러시아 대통령이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습니다. 2024 러시아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5선을 확정한 겁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CEC)는 18일 97.39%를 개표한 결과 푸틴 대통령이 득표율 87.34%로 당선을 확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총투표율은 74.22%였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2000·2004·2012·2018년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승리하면서 2030년까지 6년간 집권 5기를 열게 됐습니다. 그것도 러시아 대선 ‘역대 최고 득표율’을 갱신하면서 말이죠. 종전 최고 기록도 2018년 그가 기록한 76.7%입니다.

이로써 2000년에 태어난 러시아인은 서른이 될 때까지 ‘단 한 명’의 대통령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사실 권위주의적인 통치 스타일로, 독재자를 뜻하는 ‘스트롱맨’ 평가를 받는 푸틴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도 상당한 저항을 받았습니다. 투표소 방화를 시도하는 이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 접경지 침투 시도도 이어졌죠. 지난달 옥중 사망한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지지자들이 주도한 ‘푸틴에 맞서는 정오’ 시위도 열렸습니다.

그런데도 푸틴 대통령은 압도적인 득표율로 ‘5.0(집권 5기) 시대’를 열었는데요. ‘살인 독재자’라는 비난까지 받는 그가 어떻게 높은 지지율을 기록할 수 있었던 걸까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뉴시스)
푸틴, 헌법까지 바꿔 장기 집권…사실상 ‘종신 집권’ 가능성도

푸틴 대통령은 냉전 시기 세계 최고의 정보 역량을 갖고 있던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입니다. 1999년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사퇴하며 총리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이후 지금까지 권력을 거머쥐고 있죠.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5명과 정상회담을 했을 정도입니다.

러시아는 당초 3번 연속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헌법 조항을 갖고 있었습니다. 2004년 71.3%의 득표율로 연임한 푸틴 대통령도 2008년에는 재연임을 금지한 러시아 헌법에 막혀 2012년까지 총리로 물러나야 했는데요. 대신 이 기간 대통령을 맡은 최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막후에서 실권을 이어갔습니다.

2011년엔 푸틴의 통합러시아당이 승리한 총선 결과가 조작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푸틴은 총리 시절에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리고 연임도 가능하게 헌법을 개정하면서 2012년 63.6% 득표율로 대통령에 복귀했는데요. 2018년 대선에는 역대 가장 높은 76.7% 득표율로 집권 4기를 열었죠.

그는 2020년 개헌을 통해 두 차례 더 6년 임기 대통령직을 수행할 길까지 열었습니다. 다음 대선에도 출마할 수 있는 만큼, 장기 집권을 넘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사실상 종신 집권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러시아 반정부 시위단체인 ‘푸시 라이엇’ 회원들이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47)의 죽음과 관련해 ‘살인자들’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있다. 나발니는 지난 16일 수감 중이던 러시아 최북단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에서 갑작스레 사망했다. 그의 시신에서는 멍 자국과 심폐소생술(CPR)의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AP/뉴시스)
서방 “살인 독재자” 거센 비난에도…높은 지지율, 왜?

푸틴 대통령이 장기 집권하는 과정에서 서방은 ‘러시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맹공에 나섰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푸틴 대통령을 “살인 독재자”, “폭력배”라고 비난했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022년 그를 “전쟁광”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이 같은 비난은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 무장 반란을 주도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 최대 정적으로 평가받던 나발니 등 많은 비판자가 의문사하거나 투옥됐다는 사실에서 비롯됐습니다. 또 푸틴 집권 기간 반복적으로 전쟁이 발생했다는 이유도 있죠. 그는 체첸 전쟁 이후에도 2008년 조지아 전쟁으로 남오세티야 독립을 이끌었고, 2014년에는 무력을 동원해 크림반도를 병합했습니다. 2022년부터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을 이어가고 있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부릅니다.

국제적 비난은 높아져만 갔고, 서방도 강력한 경제 제재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푸틴의 러시아 내 지지율은 오히려 올라갔죠.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지도자로서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는다는 건데요. 이는 푸틴 정권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푸틴이 크렘린궁에 입성한 건 1996년 옐친 전 대통령 시절입니다. 그는 대통령실 행정 담당 제1비서실장, KGB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국장 등 권력의 핵심부에 접근했는데요. 1999년에는 46세에 총리로 ‘파격’ 발탁됐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1994∼1996년 1차 체첸 전쟁 실패에 이어 1998년에는 금융 위기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했고, 1999년 9월 연이어 테러가 발생해 2차 체첸 전쟁이 벌어졌죠.

2차 체첸 전쟁 당시 총리였던 푸틴은 “화장실에서도 그들을 소탕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체첸 수도 그로즈니 공습을 주도, 체첸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무명이었던 푸틴의 입지를 끌어 올린 사건으로 평가되는데요.

지지율이 5%로 폭락한 옐친 대통령이 1999년 12월 31일 사임하면서 푸틴은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았고, 이듬해 3월 대선에서 52.9% 득표율로 대권을 거머쥐었습니다.

국제 고유가와 천연가격 상승 덕분에 러시아 경제도 살아났습니다. 러시아는 2008년 전까지 국내총생산(GDP)이 연 7%대로 고속 성장했죠. 러시아 위상이 급부상하면서 러시아 국민은 푸틴을 ‘러시아의 구세주’라고 불렀습니다. 소련 체제가 막을 내린 후 혼란과 불안 속에 탄생한 푸틴 정권이 ‘대국’ 향수에 젖어있던 러시아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켜준 겁니다.

소련 붕괴 트라우마가 없는 젊은 층도 비슷합니다. 경제적 안정과 질서를 우선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는데요. 러시아는 석유·가스·식량 등 풍부한 자원을 무기로 세계 경제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권위주의적 통치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대다수의 국민이 푸틴의 공(功)이 과(過)보다 크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뉴시스)
러시아 대선 반응은?…특별군사작전·서방 대립 강화 가능성

푸틴이 높은 지지율로 5선을 확정 짓긴 했지만, 특별군사작전에 반대하는 야권 인사들의 출마는 가로막히는 등 이번 대선이 사실상 ‘답이 정해진’ 선거였다는 사실은 한계로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 대선으로는 처음으로 사흘간 투표가 진행되고 온라인 투표가 도입된 점에 대해서도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미 백악관은 러시아 대선에 대해 “분명히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입장을 밝혔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권력에 굶주린 독재자’라고 표현하면서 “영원히 통치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죠. 나발니의 최측근 레오니트 볼코프는 푸틴 대통령의 높은 득표율 예상치에 대해 “푸틴의 득표율은 현실과 조금의 관계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낙선이 확정된 후보들은 일찌감치 푸틴의 승리를 인정했습니다. 대선에서 득표율 2위를 기록한 니콜라이 하리토노프는 “우리는 선거 기간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진행했다”고 말했고, 3위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는 “승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푸틴”이라고 전했죠. 이는 불만을 표출했을 때 가혹한 불이익을 받은 러시아인들의 사례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실로 푸틴 정권은 정부에 비판적인 독립언론과 서방 주요 SNS의 접속을 차단,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을 비판하면 처벌하면서 여론을 통제하고 반대자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전시에 치러진 대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푸틴은 2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을 얻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향후 추가 징집 등 ‘특별군사작전’ 정책이 강화되고 서방과의 대립도 심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데요. 러시아가 ‘새 영토’로 부르는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도 푸틴 대통령은 88~95%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비밀투표를 보장할 수 없는 투명한 투표함과 조작 우려가 제기되던 온라인 투표가 도입된 가운데서 말입니다.

서방의 제재에 대응하기 위한 북·중·러 관계가 더욱 밀착되면서 한·미·일 공조와 한반도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데요. 푸틴 대통령은 13일 공개된 리아 노보스티 통신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핵무기를 쓸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당선이 확정된 17일 밤에는 “무엇보다 우리는 ‘특별군사작전’ 틀 내에서의 과제를 해결하고 국방력과 군대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이는 현재 빠른 속도로 수준 높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죠. 그는 “우리의 과제는 국민의 신뢰를 이용해 설정된 모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다”고 거듭 강조했는데요. 이른바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현 우크라이나 정권 축출), ‘탈군사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인 보호’ 등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확인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국제사회의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의 생애 다섯 번째 취임식은 5월 7일 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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