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핵심 연구원 영입한 마이크론, 차세대 HBM 개발… 기술유출 우려 커져

입력 2024-03-07 14:38수정 2024-03-0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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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D램 설계 관련 기술, 국가 핵심기술"

▲SK하이닉스 본사 전경 (뉴시스)

SK하이닉스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며,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초창기부터 관련 업무를 해 온 연구원이 전직 제한 기간을 어기고 미국 마이크론에서 임원으로 재직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SK하이닉스는 이 직원의 전직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지만 이미 상당 부분 HBM 관련 기술이 유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7일 법조계와 SK하이닉스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재판장 김상훈)는 최근 SK하이닉스가 전직 연구원 A씨를 상대로 낸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고 위반 시 1일당 1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A씨는 현재 마이크론 본사에 임원 직급으로 입사해 재직 중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채무자(A씨)는 오는 7월 26일까지 미국 마이크론과 각 지점, 영업소, 사업장 또는 계열회사에 취업 또는 근무하거나 자문계약, 고문계약, 용역계약, 파견계약 체결 등의 방법으로 자문, 노무 또는 용역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A씨는 SK하이닉스에 입사해 메모리연구소 설계팀 주임 연구원, D램설계개발사업부 설계팀 선임연구원, HBM사업 수석, HBM 디자인부서의 프로젝트 설계 총괄 등으로 근무했다. 2022년 7월 26일 퇴사했다.

A씨는 SK하이닉스 근무 당시인 2015년부터 매년 '퇴직 후 2년 간 동종 업체에 취업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정보보호서약서를 작성했다. 퇴직 무렵인 2022년 7월에는 전직 금지 약정서와 국가핵심기술 등의 비밀유지 서약서를 썼다. 전직 금지 약정에는 마이크론을 비롯해 전직 금지 대상이 되는 경쟁 업체가 구체적으로 나열됐다. SK하이닉스는 작년 8월 A씨의 이직 사실을 확인하고 법원에 전직 금지 가처분을 냈다.

▲SK하이닉스 HBM3E (자료제공=SK하이닉스)

이번 판결에 대해 SK하이닉스 측은 "HBM을 포함한 D램 설계 관련 기술은 국가 핵심 기술에 포함되기에 법원의 판결은 적법하고, 환영하는 바"라고 밝혔다.

HBM은 떠오르고 있는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현재는 SK하이닉스가 AI의 핵심인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한 엔비디아에 HBM3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다만 그동안 HBM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마이크론이 최근 HBM 5세대인 HBM3E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히며 지각 변동을 예고한 바 있다.

반도체 업계에선 이번 사태의 중심에 있는 SK하이닉스 전직 연구원이 기술 유출을 주도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해당 연구원이 퇴직하기 한 달 전 SK하이닉스는 HBM3 양산에 돌입했다. 당시 SK하이닉스는 양산 사실을 공개하며 "엔비디아와 손잡고 고사양 D램 시장에서 제일가는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해당 연구원은 HBM3 설계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은 HBM3까지는 시장에서 주목을 거의 못 받았던 업체였는데, 최근에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HBM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며 "이직한 SK하이닉스 연구원 1명으로 그렇게 됐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흐름을 보면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퇴사한 핵심 기술 인력이 경쟁 업체로 이직한 사실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를 알아내고 전직 금지 가처분 등을 내도 법원의 인용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사실상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전쟁에서 군사 기밀이나 군 병력이 유출되면 승리하기가 어려운데, 반도체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라며 "개발된 핵심 기술과 인력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관련 처벌이 약한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1심 사건 총 33건 중 무죄(60.6%)와 집행유예(27.2%)가 전체의 87.8%였다. 이 교수는 "국가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에 대한 양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핵심 기술 개발자에 대한 처우 개선도 주문했다. 이종환 교수는 "기술 유출의 다수는 연봉 등 처우 문제에서 비롯된 이직 과정에서 발생한다"며 "핵심 기술 개발자들에 대해 합리적인 보상을 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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