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스톰’ 부르는 홍콩H지수·부동산 PF…긴장하는 은행·증권·건설

입력 2024-01-23 15:51수정 2024-01-2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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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요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심화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스템과 실물경기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현대경제연구원)

홍콩H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우려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가 기압골을 형성하면서 금융시장에 찬바람을 끌어들이고 있다. 대규모 손실이 시작된 홍콩H지수 ELS는 마진콜 사태로 원화값이 급락하고 채권 시장이 마비됐던 2020년 3월과 오버랩된다. 금융시장은 달러 확보를 위해 보유 기업어음(CP) 등 단기채 투매 → 조달 금리 상승 → 실물 시장 급랭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우려하고 있다. PF 리스크는 위험성이 다소 낮게 감지되지만, 한 번 터지면 파급력이 워낙 큰 탓에 잠재적 시한폭탄으로 꼽힌다. 2개의 폭풍이 ‘시스템 리스크’라는 퍼펙트 스톰을 불러오고 있다.

ELS발 마진콜 발생땐 외환시장 우려 대비해야

홍콩H지수 ELS 사태는 손실 피해를 넘어 금융위기로 전이될 우려마저 불러일으킨다. 홍콩H지수가 급락하면서 국내 증권사가 운영하는 ELS에 대해 해외 금융사들이 마진콜(추가 보증금 납부)을 요구할 우려도 커진 탓이다. 마진콜은 증권사에서 주식계좌의 증거금을 보충하라고 연락이 오는 것이다. 증권사는 ELS 만기 상환 수익금 지급을 위해 홍콩H지수 풋옵션(주가가 떨어질 때 수익을 보는 옵션)을 팔고, 이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ELS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한다.

문제는 주가지수가 급락할 때 벌어진다. 풋옵션 손실 발생으로 해외 투자은행이 마진콜을 요구하면 국내 증권사는 보유하던 원화 채권과 CP 등을 시장에 팔아 달러를 마련해야 한다. 채권시장에 채권 급매물이 나오면 시장금리는 급등하고, 외환 시장에 원화 급매가 나오면 원화값이 급락할 수 있다.

2020년 코로나19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해외 파생거리 증거금 수요가 급증하면서 외환시장과 단기금융시장에 충격을 주었고, 시스템리스크 발생 우려가 커진 바 있다. 해외 주가지수를 포함한 ELS 규모가 컸던 영향이다.

당시 금융당국은 증권회사들의 건전성 제고를 위해 유동성 및 레버리지 비율 관리를 강화했다. 2020년 ELS 마진콜 사태를 계기로 국내 증권사에 ELS 헤지(위험자산의 가격변동을 제거하는 것) 운용 물량 대비 20% 이상의 달러 유동성을 갖추도록 규제했다.

그러나 시장 유동성이 충분해도 심리적 이유로 유동성 문제가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장근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ELS 시장 상황에 따라 발행사의 자기매매 부분 수익의 변동이 크며, 2020년과 같이 외환시장과 단기자금시장에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주요 증시 등락 (삼성증권, 한국신용평가)

‘판도라의 상자’ PF는 아직 문도 안 열렸다

크레딧채권 시장은 태영건설 워크아웃 이벤트에도 아직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양도성예금증서(CD), CP 금리가 하향 추세를 보일 정도로 연초 기관들의 자금집행과 맞물리면서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자금시장에 풍부한 수요가 유입되는 상황이 크레딧시장 안정에도 기여하고 있다. 우량 회사채 수요예측에도 조 단위의 자금이 몰리고 있고, 펀더멘탈이 안정적인 A등급 회사채 수요예측도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건설채 가늠자 역할을 하는 현대건설은 최근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 이후 첫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에서 목표액의 5배에 달하는 주문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 부동산PF는 사업재구조화 등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과정에서 펀더멘털이 훼손되거나 유동성이 악화하는 회사가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특히, 과거 글로벌금융위기, 코로나위기, 레고랜드 사태 등 사전에 예측하기 힘든 사건들이 벌어질 때마다 크레딧 스프레드가 대폭 확대되며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부동산 PF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있는 금융회사들은 충당금 적립 등을 통해 선제적인 완충력 확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선순위 사업장 비중이 높고 자본완충력이 풍부한 은행·보험보다는 증권·캐피탈·저축은행의 건전성 지표가 보다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경우 중·소형사의 자기자본 대비 주요 익스포저 비율은 각각 43.2%, 34%다. 대형사(29.1%) 대비 익스포저 비율이 높다. 중소형 증권사들이 부동산PF 리스크에 더 취약하다는 뜻이다.

정연홍·김성신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중소형 증권사 위주로 순요주의이하자산비율이 상승하고 있는데 정리절차에 돌입하는 PF 사업장이 늘어날 경우 요주의로 분류된 중·후순위 자산들의 손실반영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대형사의 경우 상황이 나은 편이나 해외부동산 손실 반영 리스크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최악의 경우는 ‘헤어컷 감염’

금융권에서는 금융시스템 리스크 전이를 막기 위해 썩은 살을 도려내는 국지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LS와 부동산PF 사태가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확장될 경우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 건설사, 증권사, 은행 등을 중심으로 연쇄 유동성 위기가 불거질 수 있는 탓이다.

최악의 경우 자산가치 하락이 연이어 발생하는 ‘헤어컷 감염’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 채무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화한 금융 자산을 순자산가치로 현실화하는 이른바 ‘헤어컷’이 일어나게 된다. 예컨대 액면가 10억 원짜리 채권이 부도 위험성 탓에 7억 원으로 가치가 낮아지는 식이다. 헤어컷이 발생한 금융 자산을 보유한 금융사의 자산가치는 하락하게 되고, 도산 우려에 노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헤어컷 팬데믹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한국 부동산 PF시장은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하되 단기적으로 풍선의 바람을 천천히 빼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며 “원칙 있는 구조조정, 질서 있는 연착륙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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