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질병청 ‘HPV 백신 2차 접종 무용론’에 업계·학계 “말도 안 돼”

입력 2024-01-12 17:00수정 2024-01-1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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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영국, 호주 사례 근거 NIP 1차 접종만 지원 검토

(게티이미지뱅크)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으로 알려진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접종 횟수를 두고 정부와 백신 개발사의 입장이 정면 충돌했다.

질병관리청(질병정)은 1차 접종만으로 백신의 효과가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한국MSD는 “의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반박했다. 질병청의 판단에 따라 향후 국가예방접종(NIP) 사업을 통한 무료 접종 대상이 대폭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12일 질병청에 따르면 최근 당국은 HPV 백신 1차 접종만 NIP 사업을 통해 무료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해당 사업 모델을 시행하면, 지원 대상자는 1차를 무료로 접종할 수 있지만, 2~3차 접종 비용은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질병청은 2~3차 접종 여부가 백신 효과에 큰 차이를 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22년 발표가 질병청의 '2차 접종 무용론'에 힘을 실었다.

WHO 예방접종 전문 전략 자문 그룹(SAGE)은 1회 백신 접종만으로도 기존의 2~3회 접종과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발표했다. SAGE는 연령에 따라 9~20세에 대해 1~2회 접종을, 21세 이상에 대해 6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을 권고했다. 또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등으로 면역이 약화된 사람은 가능하면 3회 접종을 받아야 하며, 적어도 2회 접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영국과 호주는 지난해 HPV 백신 관련 국가 접종 프로그램을 1차만 접종하는 모델로 전환한 바 있다.

질병청 관계자는 “2~3차 접종까지 했을 때의 이득이 1차만 접종했을 때와 비슷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어보려는 단계”라고 말했다.

근거가 확실할 경우, 기존의 NIP 지원 범위를 축소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현재 12~17세 여성청소년, 18~26세 저소득층 여성에게는 2~3차 접종이 무료로 지원되는데, 이들에게도 1차 접종만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근거가 마련되면 바뀔 수도 있다”며 “아직 결정된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

MSD는 의학적 근거가 없다며 2차 접종 무용론에 반박했다. 1회 접종이 면역원성과 HPV 감염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 밝힌 연구는 이뤄졌지만, 장기적으로 HPV에 의한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지 연구한 사례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 MSD 관계자는 “HPV 백신 1회 접종이 HPV 관련 특정 암과 질환을 장기적으로 예방하는지 보여주는 데이터는 제한적이며, 자궁경부 및 자궁경부 외 HPV 관련 전암 혹은 암 관련 효능에 대해 완료된 무작위 비교 임상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말했다. 이어 “모든 1회 접종의 연구는 여성에서 이뤄졌고, 남성이나 면역저하자 등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고 강조했다.

질병청이 제시한 해외 사례는 국내 정책에 적용하기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한국MSD 관계자는 “WHO는 공중보건 측면에서 백신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위해 1~2회 접종을 권고하면서도, 장기적인 예방 효과에 대해서 추가연구가 필요함을 언급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과 호주는 HPV를 국가 예방 접종으로 각각 2008년, 2006년 시행해 이미 16~18년이 흘렀고, 남아 접종도 같이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과 다른 환경”이라고 했다.

관련 의학계는 2~3차 접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발상은 ‘무리수’라며 우려를 표했다.

배상락 대한요로생식기감염학회 HPV백신접종이사는 “WHO가 1차 접종의 효과를 발표한 취지는 의료 접근성이 극히 떨어지는 아프리카 국가를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독려한 것”이라며 “영국과 호주는 모든 성별을 대상으로 10년 이상 접종을 하면서 집단면역이 충분히 형성돼 한국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배 이사는 “2~3차 접종을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고 판단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질병청이 기획재정부를 설득하는 데 실패해 적은 예산으로 대선 공약을 이행하고자 무리를 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HPV 백신 중 GSK의 2가 백신 ‘서바릭스’와 MSD의 4가 백신 ‘가다실’을 NIP 사업으로 접종하고 있다. 이 외에 NIP 사업에 포함되지 않는 가다실 9가 백신도 국내 도입돼 있다.

이들 백신은 2~3차까지 맞아야 접종이 완료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한 용법·용량은 서바릭스가 15세~25세 대상 ‘0, 1, 6개월 일정으로 3회’, 가다실이 ‘최초 접종일로부터 2개월, 6개월 간격으로 3회’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당시 ‘HPV백신 무료 접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에 따라 질병청은 NIP 대상을 조정하기 위한 비용효과성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질병청은 15일 예방접종 전문위원회 산하 HPV 위원회를 개최하고 HPV 백신 1차 접종의 효과성과 NIP 사업 지원 범위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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