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예술가…정은혜 "사람을 안아주는 게 좋다" [신년 인터뷰]

입력 2024-01-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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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그린 그림…4000여 명의 얼굴과 포옹 담아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대중적 인지도 얻어
왕성한 활동 ‘홀로서기’ 울림…장애인 예술 저변 확대

▲정은혜 작가가 지난달 19일 경기 양평군에 위치한 작업실 인근의 한 전시회장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다. 정은혜 작가도 그렇다. 정 작가는 미술, 책, 드라마, 영화 등 여러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전방위적 예술가다.

그의 예술 활동이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는 장애인 예술의 저변을 확대했다. 장애인도 삶의 단독자로 세상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2024년 새해가 밝았다. 번잡한 일상을 다시 살아가야 하는 지금, 그의 작품은 예술이 삶을 어떻게 위로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난달 19일 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한 작업실 인근 전시회장에서 본지와 만난 정 작가는 "사람을 안아주는 게 좋다. 친구를 안으면 따뜻하다. 따뜻함이 좋다"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 인기가 너무 많다. 귀찮다. 내가 좀 바쁘다”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그래도 동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돈을 벌 수 있어서 좋다. 일이 끝나면 같이 춤도 추고, 술도 먹는다. 그게 참 좋다”라고 전했다.

2013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정 작가는 지금까지 개인전을 10회나 열었다. 매년 1회 이상 연 셈이다. 단체전까지 합하면 30회가 넘는다. 또 정 작가는 올해에만 70여 회의 강연을 진행했다. 학교, 교육청, 도서관, 법원, 경찰청 등 그가 강연하는 장소는 무척 다양하다.

정 작가의 어머니 장차현실 작가는 "정 작가가 주로 발달장애인의 삶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한다"며 "또 예술 노동을 하는 정 작가에게 '권리 중심 중증 장애인 맞춤형 공공 일자리'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와 남편이 보조적 역할을 하고, 정 작가가 직접 PPT를 넘기면서 발표한다"고 덧붙였다. 강연에 대해 정 작가는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전했다.

▲정은혜 작가가 지난달 19일 경기 양평군에 위치한 작업실 인근의 한 전시회장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정 작가는 2022년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하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그는 드라마에서 배우 한지민 씨가 연기한 '영옥'이라는 인물의 쌍둥이 언니 '영희'를 연기했다. 극중에서 영희는 영옥의 아픈 손가락으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연기가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정 작가는 "재밌다. 다 같이하는 거라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어 "드라마를 보고 울었다. 영옥이 공항에서 나에게 다시 장애인 시설에 돌아가라고 했던 게 슬펐다"고 덧붙였다.

드라마를 찍으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 그는 "우빈 오빠와 핸드폰 가게에서 찍은 장면이 있었다. 그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또 "지민 언니랑 포장마차에서 싸우는 연기를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기생충'에 나오는 이정은 선배님하고 같이 연기했다. 신민아 언니랑도 같이했다. 그때가 참 행복했다"라고 전했다.

▲정은혜 작가가 그린 노희경 작가의 모습. (사진=송석주 기자)

정 작가는 드라마의 극본을 쓴 노희경 작가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노희경 작가님이 나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우리들의 블루스'를 찍으면서 선배님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게 나에게는 행복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민 언니의 쌍둥이를 연기하게 해준 노 작가님에게 감사하다. 노 작가님은 따뜻한 사람이다. 그리고 고마운 사람이다. 밝은 사람이다. 나는 그런 작가님을 보면 울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노 작가님이 저에게 톡으로 '다른 곳에서 섭외 오면 나한테 허락받고 해'라고 말했다. 그게 왜냐하면 나를 너무 아껴서 그렇게 말한 거다"라고 덧붙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서동일 감독(정 작가의 아버지)은 "작가님이 오해하겠다.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라며 웃었다.

드라마의 인기로 정 작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는 "내가 인기가 참 많다. 나를 알아봐 줘서 좋다. 고맙다. 나를 보고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게 좋다. 마음이 따뜻해진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정 작가는 서동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2022)에 출연해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의 유명인사로 거듭난 일상을 보여주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최근에는 KBS 4부작 인문 다큐 '인간: 신세계로부터'에 출연했다. 정 작가는 4부에서 나이지리아 소년 화가 카림 와리스 올라밀레칸과 함께 등장한다. 정 작가와 인연이 깊은 한지민 씨가 4부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정 작가는 "카림의 그림이 신기했다. 우리집에도 있다. 잘 그렸다. 재밌고 멋있었다"라고 전했다.

▲정은혜 작가가 지난달 19일 경기 양평군에 위치한 작업실 인근의 한 전시회장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안녕하세요.
저는 원래부터 어디서든지 인기 많은 은혜씨 작가님입니다.
저를 한눈에 봐주세요.
첫눈에 반해주세요.

정 작가는 2022년 8월 '은혜씨의 포옹'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정 작가의 시그니처인 '얼굴 그림'과 '포옹 그림' 그리고 그의 진솔한 글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장차현실 작가는 "은혜 씨가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는 행위는 사회적 신뢰를 획득해간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은혜 씨에게 그림을 의뢰한 4000명이 넘는 사람들, 그리고 노희경 작가님. 그 많은 이들이 보여준 신뢰의 힘은 은혜 씨가 발달장애인이 아닌 예술가로, 배우로 세상에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이 책은 문학동네 이야기장수(문학동네 임프린트)에서 나왔다. 이연실 대표님이 많이 도와줬다. 대표님이 일을 잘한다. 내가 그림을 잘 그려서 책이 나왔다. 일본에서도 작은 책으로 나왔다. 일본에 가서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줬다. 강연도 했다"고 설명했다.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느낌이 어땠냐는 질문에 그는 "뿌듯했다. 인기가 참 많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책을 낸 게 나한테는 행복이고 선물이다"라고 덧붙였다.

정 작가에게 그림은 무엇일까. 그는 "리버마켓에서 그릴 때, '이게 뭐야 다시 그려주세요', '환불해주세요'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이 좀 까다롭다. 그래서 환불해줬다"며 "근데 감사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림은 잘 그리는 게 아니다. 난 예쁘지 않지만 개성 있는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정 작가는 "내가 7080 음악을 좋아한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듣는다"고 말했다. 만약 친구가 우울해한다면 어떤 노래를 추천하겠냐는 질문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된다"고 말했다.

▲정은혜 작가가 지난달 19일 경기 양평군에 위치한 작업실 인근의 한 전시회장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정은혜 작가는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드라마, 영화, 미술, 책 등 여러 분야를 오가는 전방위적 예술가다. 2022년 방영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한지민 씨의 쌍둥이 언니 역할을 맡으면서 대중에게 널리 이름을 알렸다. 그는 캐리커처 작가로서 지금까지 총 4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 '포옹'과 '얼굴'은 그의 작품을 특징하는 키워드다. 그의 그림과 짧은 글을 모은 책 '은혜씨의 포옹'이 이야기장수(문학동네 임프린트)에서 출간돼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현재 그는 전시회뿐만 아니라 전국을 돌며 '장애예술인 권리 보장' 등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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